편지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서비스를 포기한 나라가 있을까. 곧 그런 나라가 나올 듯하다. 그것도 우정 선진국 중에서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다. 캐나다 우정은 5년 안에 우편물 가정 배달 서비스를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고강도 개혁 방안을 지난해 말 발표했다.
‘5가지 경영 혁신을 위한 실행 계획’이라는 이름의 이 개혁안에는 새로운 우편요금 체계 적용, 프랜차이즈 창구망 확대를 통한 편의성 증대, 운영 프로세스 효율화, 인건비 구조 개혁 등 여러 내용이 담겨 있지만, 핵심은 문전배달(Door-to-Door) 서비스 방식의 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 우정의 도어투도어 서비스 포기는 정확히 말해 가정집 도어투도어 서비스 포기다. 가정집이 아닌 회사 등에는 문전배달이 계속된다. 대신 가정집에 대해서는 지역공동우편함(Community Mail Box·CMB)으로 배달이 이루어진다. 우체국의 입장에서 CMB는 집집마다 방문해 문을 두드리는 번거로움은 물론 집 앞 도롯가의 우편함에 넣는 수고까지 단번에 줄이는 획기적 배달 방식이다. 눈길을 헤치고 다닐 일도, 개에게 물릴 일도 없어진다. 캐나다 우정은 가정 우편물을 CMB로 전환하면 연간 400만~500만 달러의 재무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가지 실행 계획 전체의 비용 절감 효과가 연간 700만~900만 달러라고 하니 가정 배달 중단이 우정 개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 배달이 중단되고 CMB로 전환되는 대상은 캐나다 전체 가정의 3분의 1(약 500만명)로서, 대부분 도시 지역이다.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가정은 이미 우편과 소포를 CMB나 단체 로비 우편함, 시골 거리 수취함을 통해 받고 있다. CMB는 우편물에 대한 개별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으며 소화물 구분함과 대형 화물 구분함을 통해 소포 우편물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우편물을 받는 입장에서도 CMB 전환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게 캐나다 우정의 논리다. 이를테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소포를 못 받는 불편을 해소해 온라인 쇼핑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을 오랫동안 비울 때 우편물이 집 앞에 쌓이는 일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CMB 이용을 통해 이웃들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찬성론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시행 과정에서는 불편과 불만이 더 크게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정 배달 중단 지역으로 발표된 위니펙의 경우 시의회가 나서서 제동을 걸었다. 노인층과 저소득층을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편의주의라는 것이다. 로스 이디와 폴라 하빅스벡 의원은 “우편번호 앞번호가 ‘R2P’ 또는 ‘R2V’인 우편물들의 가정집 배달 중단을 연기해 달라”는 뜻의 서한을 캐나다 우정에 전달했다. 이들은 “실제로 CMB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견 수렴을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정 배달 서비스 중단은 전 세계 우정이 공통적으로 처한 어려운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통상우편 물량이 급감하면서 날로 확대되는 우편 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우정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출처: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