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대학진학을 위한 통일된 객관적 시험이 없다. 주로 고교 졸업반 성적으로 입학사정을 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일종의 내신 성적만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신 성적도 정기 고사 성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과제나 쪽지시험, 수업참여도 등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일선 교사의 주관적 평가 결과가 대입을 좌우하다 보니 캐나다에서도 평가의 객관성 확보나 학교 간 편차에 따른 점수의 가감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의 앨버타주와 자치구 성격의 노스웨스트 테러토리스(Northwest Territories) 준주(準州), 누나부트(Nunavut) 준주(準州), 퀘백 주(졸업시험 반영률 30%)에는 졸업시험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앨버타 주와 이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적용하는 두 준주에서는 졸업시험으로 12학년 때 영어, 수학, 사회, 과학(물리, 화학, 생물), 불어 시험을 본 결과와 12학년 각 과목 내신 점수를 반반씩 반영해 최종 점수를 결정하고 있다. 참고로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자기 거주지 내 주립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앨버타주나, 온타리오, 밴쿠버 주 등 영어권 주에서는 외부 주로 대학을 가는 경우가 5%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보통 주별로 대입 전형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온타리오주의 경우에는 필수 및 선택과목을 합쳐 4년 간 30학점을 이수하고, 평가 결과 최소 50점 이상을 충족시키면 된다. 또 최소 40시간의 자원봉사와 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본 영어시험 코스만 통과하면 된다. 대부분의 주에서 별도의 졸업시험을 보지 않고 있어 앨버타의 졸업시험 제도가 이색적으로 비춰질 정도다.
앨버타의 고교 졸업시험 제도는 객관적 시험으로 교사 1인의 주관적 평가를 보완하고 전반적인 교육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1984년 도입된 이래 30년 이상 시행돼 왔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 시험 제도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다른 주처럼 시험을 전면 폐지하거나 반영률을 줄이라는 요구가 지속돼 왔다.
단 한번 치르는 시험의 비중이 한 학기 교실 수업과 같으니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졸업시험의 비율이 높다보니 한국의 수능 못지않게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여간 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11월 앨버타주의 60여 개 공립학교, 가톨릭학교, 교육청 등에서 졸업시험의 완전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그 반영률이라도 줄이라는 요청을 주 정부에 제기했고 지난 3월 중순 주 교육부에서 반영률을 인하하라는 조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오는 9월 신학기부터 고교 12학년 졸업시험 점수 반영률을 현재의 50%에서 30%로 인하하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줄이는 한편 교실 내 수업의 충실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물론 앨버타의 졸업시험은 미국의 SAT처럼 연간 몇 차례 응시 기회가 있다. 과목당 26달러(외국 유학생의 경우 50달러)에 달하는 재시험 수험료만 지불하면 다시 응시해 점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한국의 수능 같이 오직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나 갈수록 이 시험 준비를 위한 사설 수험 시장이 커지고 학생들의 시험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만큼 이 문제를 간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번 인하율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다.
모든 정책 변경에는 찬반 양론이 뒤따르듯 이번 졸업시험 반영률 인하를 두고도 학생들의 학력제고와 일선 교사들의 점수 뻥튀기를 견제할 수 있는 건 객관적 표준 시험밖에 없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졸업시험과 내신 성적의 점수 차가 보통 3.5%에 불과해 큰 의미가 없다는 게 대체적 여론이다.
특히 대학의 신입생 입학 사정 절차가 통상 12학년 1학기 성적이 나올 때 시작해 졸업시험 성적이 나오기 전에 대입 합격 여부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졸업시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현실적 이유도 반영률 인하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6월 시험에 응시할 경우 성적은 학사 일정이 마감된 7월에 나오므로 졸업시험 성적을 반영해 최종 대입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비록 졸업시험 결과를 조건부 합격조건으로 남겨두는 경우도 있지만 내신과 졸업시험 성적의 편차도 적어 실제로 입학통지서 수령 이후에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예 다른 주처럼 시험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도 12학년 1학기나 11학년 성적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학생들이 졸업시험에 매달리느니 11학년 성적을 올리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기도 해서다. 그래서 이번 졸업시험 반영률 인하가 전면 폐지로까지 이어지는 시초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출처:장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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