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좋아서 왔어?"
밴쿠버 공항은 습했다. 날씨만큼이나 턱 막히게 만든 입국 심사관의 무뚝뚝한 질문이 저돌적으로 날아들었다. 무심코 쏘아줬다. "캐나다 입성, 20년 만에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다"라고. 그랬더니 순간, 인상이 순한 양처럼 싹 변했다. "뼛속까지 즐겨라(Enjoy, to the bone)"라며 건투를 빌어줬다.
역시나 상상 그대로였다. 하늘 색은 채도부터 달랐다. 깊고 선명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표정도 하늘빛처럼 밝아보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흰수염이 더부룩한 할아버지의 인심 좋은 웃음에서 기분 좋은 여행이 시작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휘슬러. `자연의 천국`으로 향했다. 론리플래닛이었던가. `자연과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스쳐갔다. 역시나, 그대로였다. 명불허전, 해안선을 따라 99번 고속도로가 이어졌다. `바다에서 하늘로(Sea to sky)`라는 애칭이 붙은 이 도로. 창밖으로 펼쳐지는 검푸른 바다에 서울에서 묻혀 온 찌든 때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해안선을 지나 내륙으로 접어들어 30여 분쯤 달렸을까. 창밖으로 휘슬러 산 정상의 만년설이 눈에 박혔다. `그것이 눈인지 아니면 구름인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모습. 밥 아저씨의 유화가 떠올랐다. 아찔한 대비. 두 얼굴. `이게 휘슬러구나`란 생각이 절로 드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사실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런 아찔한 풍경이 수차례 이어진 뒤에야 휘슬러 본진에 들어섰다.
여름 휘슬러는 반전의 메카다. 만년설이 덮였던 슬로프는 놀랍게도 푸른 익사이팅 파크로 탈바꿈해 있다. 눈앞에 스키어들이 아닌 하이킹과 트레킹족들이 넘쳐난다. 함께 간 현지 가이드의 뒤통수를 치는 한마디. "휘슬러의 진면목은 여름에 나온다. 두 다리, 자전거를 빼곤 휘슬러의 여름을 말할 수 없다. 반팔 차림으로 휘슬러 산 정상에 올라 설경을 느껴보는 기분,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기자는 한달음에 곤돌라로 향했다. 분명 겨울이었다면 스키나 스노보드를 얹고서 올라갔을 곤돌라. 하지만 여름엔 배낭 하나만이 함께 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한참을 올랐던 것 같다. 어느새 주변을 에워싼 흰 눈. 여름 속에 숨은 야성의 휘슬러가 입을 쩍 벌리고 일행을 반겼다.
`곤돌라에 오르기 전 바람막이를 꼭 챙기라`던 가이드의 말,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썰렁함도 잠시. 한여름에 마주하는 흰 눈은 그 어떤 겨울의 설경보다 아름답게 다가왔다. 결국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던 손짓을 멈추고 마음에 그 풍광을 담았다. 진정한 캐나다 마니아는 여름에 이곳을 찾는다는 말, 이제서야 실감이 갔다.
한참을 넋 놓고 한여름의 설원을 감상하던 기자. 결국 사고를 쳤다. 직접 휘슬러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자전거 하이킹에 나서버렸다. 평소 자전거 좀 탄다고 생각했던 기자는 마운틴 바이크의 묵직함에 살짝 긴장했다. 쿵쾅쿵쾅 질주가 시작됐다. 휘슬러 땅의 표면을 따라 고스란히 전해지는 충격. 몸으로 느끼는 여름 휘슬러는 상상 외로 단단했다. 땀이 흘렀다. 범벅이 되도록 페달을 밟았다. 지금껏 들이켜 본 적 없는, 맑은 휘슬러의 피톤치드를 폐 속까지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여름 휘슬러를 몸에, 가슴에 담았다.
▶▶ 브리티시컬럼비아
휘슬러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캐나다 서부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태평양과 인접해 있는 것도 이색적. 장엄한 산, 맑은 호수, 태평양 해안, 울창한 숲, 만년설 등 아찔한 경관의 종합판이라고 보면 된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는 550개의 국립ㆍ주립공원이 있다. 당연히 골프, 스키, 하이킹, 인라인스케이팅, 캠핑 등의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여행객들의 메카다. www.HelloBC.co.kr, blog.naver.com/tb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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