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에 있는 페이토 호수(Peyto Lake). 설산 아래 자리한 이 호수의 오묘한 옥색 물빛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하늘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까. 그런 까닭에 호수라는 이름의 거울들을 곳곳에 깔아놓았는지도 모른다.
'하늘 호수'들을 보고자 지난달 하순 북미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질렀다. 미국 와이오밍 주와 몬태나 주를 거쳐 캐나다 앨버타 주에 이르는 광활함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초록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나 싶더니 설산이 시야를 채우며 막아서는 파노라마의 연속이었다. 멕시코에서 알래스카로 연결되는 길이 4천500㎞ 로키산맥의 험산 준령은 비경의 하늘 호수들을 곳곳에 품고 있었다.
◆설산과 하늘의 데칼코마니, 미국의 호수들=미국 와이오밍 주의 명소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은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 등장해 낯이 익은 산이다. 그랜드 티턴은 제니 호수(Jenny Lake), 잭슨 호수(Jackson Lake) 등이 명경처럼 맑은 호수를 품고 있었다. 완벽한 대칭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호수에 비친 설산은 자연이 만든 '데칼코마니' 작품이었다.
그랜드 티턴을 뒤로하고 차를 8시간 몰아 글레이셔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미국 최북단 몬태나 주에 있는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캐나다 접경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글레이셔(빙하)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름인데도 만년설의 향연을 보여주는 곳. 맥도널드(McDonald)`세인트 메리(St. Mary)`스위프트 커런트(Swift Current) 등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호수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람조차 숨죽이는 이른 아침 호수에 비친 만년설과 바위 봉우리, 침엽수들이 엮어내는 조화 앞에서는 시간이 멎은 듯했다.
◆'에메랄드 물빛 향연' 캐나다 로키의 호수들=풍경 사진 촬영은 빛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에서는 시점이 좋지 않았다. 로키의 날씨는 궂었다. 먹구름, 비바람에다 호우주의보까지 예보돼 있었다. 하늘 호수를 제대로 보기에는 최악의 상황. 유네스코 선정 세계 10대 절경이라는 루이스 호수(Louise Lake)도, 캐나다 지폐에 등장하는 모레인 호수(Moraine Lake)도 진면목을 숨겼다.
여정을 접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루이스 호수에서 40㎞ 북쪽에 위치한 페이토 호수(Peyto Lake)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숨을 고르며 20분 정도 산길을 올랐을까. 장엄한 로키 산맥 봉우리 사이로 오리발 모양의 페이토 호수가 눈 아래 펼쳐졌다. 누군가 일부러 옥색 물감을 잔뜩 풀어놓았나.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물빛이었다. 여기저기서 "어메이징!" "판타스틱!"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수가 푸른 것은 하늘빛을 담아서라는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하늘이 잔뜩 흐린데도 페이토 호수는 진한 옥빛을 띠고 있었다. 비결은 이랬다. 빙하에서 녹아든 물과 토사가 섞여 호수로 흘러들어 가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광물질과 빛의 반응이 이처럼 오묘한 물빛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위로하는 것 중에 아름다운 풍경만 한 것도 없으리라. 북미로 떠난 하늘 호수 여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정화해주는 힐링 로드였다. 미국`캐나다에서 글`사진 김해용 기자 kimhy@msnet.co.kr
◆루트 짜기=미국 중북부와 캐나다 중남부를 관통하는 여행 루트를 짜기란 쉽지 않다. 관련 패키지 여행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루트를 다니려면 자동차가 필요한데 운전 거리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루트를 따라 여행하려면 캐나다 캘거리를 여정의 기착지로 삼는 것이 좋다. 캘거리에 항공편으로 도착한 뒤 차량을 렌트해 움직이는 것이 동선 짜기가 편하다.
◆항공편=인천에서 출발하는 캘거리 직항 노선은 없다. 캐나다 밴쿠버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애틀,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해 가는 항공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관광 적기=이 지역의 호수들은 위도가 높은데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곳이 많아, 늦가을부터 이듬해 늦은 봄까지 얼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북미 대륙의 '거울 호수'를 제대로 보려면 6~9월이 좋다.
◆기타=캐나다와 미국은 비자 면제 협정에 따라 관광 목적이라면 일정 기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캘거리에서 자동차를 렌트할 경우 미국 국경을 넘어갔다 돌아와야 한다. 미국`캐나다 국경을 자동차로 넘는 것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미국의 호수를 포기하고 캐나다 호수만을 둘러보는 계획을 짠다면 여행사의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미국 글레이셔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의 스위프트 커런트 호수(Swift Current Lake). 명경처럼 맑은 호수에 비친 만년 설산과 하늘이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연출해낸다
[출처: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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