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 로그인
    • 소셜로그인 네이버,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로그인연동 서비스로 본 사이트에 정보입력없이로그인하는 서비스 입니다. 소셜로그인 자세히 보기
청야칼럼
Calgary booked.net
-29°C
총 게시물 95건, 최근 0 건 안내
이전글  다음글  검색목록 목록

가을 단상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7-09-05 (화) 17:23 조회 : 15108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11
  • 고기원 부동산
  • 이미진
  • Tommy's Pizza
  • 코리아나 여행사
  • WS Media Solutions
  • Sambo Auto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협회)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읊조리기만 해도 마음은 으레 어릴 적 고향마을로 달려간다.

토박이 농민들의 넓은 집 뜰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열매가 벌그레 주렁주렁 탐욕스럽게 열리고, 앞산의 밤나무 밭에는, 아람이 무르익어 떨어질 무렵이면, 네 갈레로 쭉 터진 밤송이에서 알밤이 방실거린다.

넓디넓은 황금들판에서 세찬 물결이 이는 늦가을,

학교 수업이 없는 날 새벽이면, 나는 괜스레 바빠진다. 자루를 울러 메고 행여나 먼저 온 사람이 주워갈세라, 대추나무 밤나무 있는 곳을 향해 냅다 뛴다. 밤사이 울타리 밖으로 떨어진 낙과를 주워 담기만 해도, 금세 한 자루 가득 찬다. 참기름으로 갓 닦아낸 것처럼, 알밤과 대추에서 갈색 윤기가 반들거린다. 언젠가는 마을 종갓집 노인이,울타리 밖에서 알밤을 줍던 나를 힐끗 보시더니, 마당 안에 떨어진 굵은 알밤들만 골라 연신 밖으로 던지며 말을 건넨다. “너거 집 제사상 차릴라 그러제” 지금 생각하니 마당의 큼직한 햇밤으로 베푸는 진실공덕(眞實功德)을 실천하시고 있었다.

내친김에 누렇게 익은 들녘의 논으로 향한다. 갓 낫질해서 눕혀 놓은 듯, 싱싱한 볏 짚 사이를 이리저리 훑으면, 아침 이슬을 머금고 파르르 떠는, 메뚜기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한 병 가득히 채워오면, 어머니는 들기름에 연신 들들 볶아 건네준다. 하얀 사기종발 위로 피워내는 메뚜기 향기가, 부엌 어간(於間)을 가득 채운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진했던지, 지금 생각만 해도 코끝이 간지럽다.

Image result for 가을단상

가을은 순 우리말, ‘갓(끊)다’의 어원을 지니고, ‘가실하다’(추수하다)가 ‘가슬’로 불리고 가을이 됐다. 미국은 fall, 영국은 autumn으로 불린다. fall은 영국의 16세기 중반autumn의 동의어로, 'fall of the leaf'로 사용되다가 실용주의 미국에서는 ‘fall’로 간결해지고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에서는 ‘autumn’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렇듯 가을의 의미는, 다 자란 식물을 잘라내고, 낙엽 떨어지듯 떨어뜨려내는 계절이다. 가을은 한해의 것을 거둬들이고 떨어내는 계절이지만, 야생동물 들에게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는 계절이다. 먹이를 저장하는가 하면, 털들이 더욱 조밀하게 자라고, 철새들은 따뜻한 곳으로 죽음을 무릅쓴 이동을 감행한다.

가을이 오고 있다.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지만, 밤이 되자 밤바람이 차다.

가게 뒷마당의 이태리 포플러 나무에서, 노란 낙엽이 백열등을 타고 쪼르르 뛰어 내린다. 산들바람에 신바람이 났나보다.

나는 아직도 심신이 지쳐있어 머리가 맑지 못하다.

어정쩡하게 보낸 여름 탓인지 지금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여름과 겨울처럼 강열한 기운을 품는 계절이 아니라, 강산이 노란빛으로 물드는, 잠시 스쳐가는 담백한 계절로 위안을 받곤 했는데, 지금 온 몸으로 가을을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 총총한 별빛, 큰 쟁반만한 달빛, 아스펜 나무숲 사이들 스치는 고즈넉한 가을 정취는커녕, 인근 지역에서 계속 덮치는 산불 연기 때문인가? 쾌쾌하고 탁한 공기를 연신 들이 마시니, 마치 서울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가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친 몸을 추슬러야만 긴긴 겨울을 보낼 수 있다.

아침 일찍 인근의 Fish Creek Park 깊숙한 계곡의 개울물을 찾았다. 마치 강물에 발을 담구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인도사람들처럼, 발을 담근다. 발이 시리 오며 정신을 깨운다. 큰 가뭄인데도 아직도 곳곳에 작은 계곡물이 솟아 흐른다. 그들은 만나고 또 만나고 합쳐져서 큰 물줄기를 만든다. 아하! 계곡 물이 사는 법이 이것이구나.

노년이란, 젊은 시절처럼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보는 것이다.

오랜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세월의 경험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그것이 노인의 자랑이고 자산이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옛 잠언처럼, 나는 인생의 긴 터널 속을 지나가는 나그네이지, 동굴 속 주인은 아니기 때문에, 이 가을에 지친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닦아 내며, 겸허한 마음으로 가을을 맞고 싶다.


이전글  다음글  검색목록 목록

총 게시물 95건, 최근 0 건 안내
제목 날짜 조회
캘거리 한인회가 주관한 제103 주년 삼일절 기념식이 2022년 3월 5일(토) 오전 11시 정각, 캘거리 한인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구 동현 한인회…
03-15 7740
캘거리 가을이 빠르게 깊어간다. 온난화 변덕이 로키산맥을 부추기는가, 여름이 해마다 늑장을 부린다.  공간을 빼앗긴 가을이 제 멋을 잃어…
10-18 8736
캘거리는 나의 첫 정착 도시, 고향처럼 푸근한 정이 깃든 곳 갈수록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디아스포라는 태생적으로 더 좋은 …
11-29 8955
팬데믹 기간을 지나는 노년의 가파른 삶들이 경건한 추억들을 만든다. 추억은 회상할수록 점점 미화되어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지만, 노년의 …
07-06 9702
지금 지구촌에는 기후변화의 피해 여파가 심각하다. 불과 몇 주일 사이에 발생한 일들이다. 북미 주의 고온 열돔 현상과  유럽의 대홍수 재난 사…
07-20 9840
내 서재에는 부모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액자가 하나가 걸려있다.이민을 오기 몇 해 전쯤, 강원도 기도원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춘…
10-05 9963
캘거리 한인회 정기총회가 2021년 12월 11일 9(토), 예정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늦은 12시 정각, 캘거리 한인회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와 눈…
12-28 10344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COVID-19 팬데믹의 힘든 상황 속에서 두 번 째 맞이하는 부활 주일 이른 아침이다.  실내가 텅 비어있는 고요한 맥도날…
04-08 10371
8월 30일자 The New York Times 인터넷신문에는 Thomas Gibbons-Neff 기자의 아프카니스탄 주둔 미군의 마지막  비참한 철군 모습을 장문의 기사가 비…
08-31 10590
낯선 전염병의 두려움에 시달리다 어두움이 짙어지면 늙음의 두려운 시간들이 시작된다. 쇠약의 언어들이 부활하고  늙은 관절의 주책없는 칼질…
09-15 11187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앨버타 주민들은 온통 거리로 나와 자유와 환희의 축제를 만끽하며 들떠 있을 것입니다. 점입가경으로 주말에는 각종 종…
06-21 11235
향유(享有)고달프고 불안한 굴레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자유를 누리는 것, 디아스포라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소망이다. 고난과 시련의 진흑…
10-27 12183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금주 월요일, 장장 11시간 동안 생중계된 한국의 조국 법무장관 가택 압수수색 생중계 방송을 시청했다. 유명 …
09-25 12396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마지막 피자 배달이에요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나섰어요 세상이 꽁꽁 얼어 있어…
12-30 12612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주님 새해에는 어머니의 체온으로 오소서 어릴 적 물에 빠져 언 심장을  흰 저고리 풀어 헤치고 따듯한 …
01-09 13110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5년 여 만의 한국 방문이다,  8월 초순은 유례없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서울, 부산, 울산…
08-30 13293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4월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설렘은 세찬 인생의 떨림이 한참을 요동치고 난 후에야 찾아오는 신비로운 마음…
04-06 13371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설날 아침 새벽이다.  마음은 이미 고향에 있는데, 이 몸을 초승달 쪽배에 태우고 훨훨 날아 …
03-13 13554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경자년 새해 아침,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에서 묵상을 하며 희망의 참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제…
01-09 13620
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햇빛이 혹한칠흑의 고요함을 깨운다. 붉고 강열한 한줄기 선들이 로키 산맥을 휘감고, 넓디넓은 유채 밭, 동토의 …
01-08 13695
목록
 1  2  3  4  5  맨끝
 
캘거리한인회 캘거리한인라이온스클럽 캘거리실업인협회 캘거리여성한인회 Korean Art Club
Copyright ⓒ 2012-2017 CaKoNet. All rights reserved. Email: nick@wsmedia.ca Tel:403-771-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