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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 불안의 파도를 넘어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8-12-27 (목) 02:08 조회 : 17358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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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향해 "애처롭구나". 속삭이니, 달력은 오히려 날 보고 "너무 초조해 마십시오" 가엾은 듯 걱정을 한다. 매일 서로를 쳐다보며 대화를 시작한 1년여의 세월도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며 불안의 그림자가 파도의 너울처럼 일어나기 시작한다. 희망의 새해를 기대하기보다는 세상의 걱정과 불안이 앞서간다.

몇 해 동안 병고로 인한 죽음의 불안이 스토커처럼 따라다녀, 용케도 피해 다녔다. 세월을 이긴 날들이 대견스러워, "12월이 오면 승리와 감사의 축배를 들리라" 다짐했었는데, 왠지 모를 불안의 기운이 다시 엄습해오며 점점 나약의 나락으로 빠져들려고 한다. 정신과 의사가 흔히 인용하는 <예기불안>의  일종이거니 스스로 다독거려도 불안은 가실 줄 모른다.

불안은 마음에 걱정스러운 마음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편치 못해 생기는 현상이라, 가난한 마음으로 넉넉한 삶을 사는 훈련이 잘 된 내가 행복을이고 사는 것 같은데도 오는 새해가 불안하다. 

불안은 나의 삶이 활발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로 담담하게 맞아들여야 할 익숙한 손님이다. '병적 불안'이 아니고 일상에서 매일 경험하는 정상적인 불안이다. 자율 신경계가 고장 날 정도의 불안 발작이 아니다. 그저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만성적인 걱정 불안이다. 현대의 불안 발작은 약물치료로 쉽게 치유되지만 <예기불안>은 굳건한 자신을 신뢰하는 의지와 건전한 인문학적 생활 철학이 없으면 치유가 쉽지 않다.

천진난만한 손자들을 볼 적마다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소소한 걱정으로 시작되는 불안은 이웃과 나라, 미래 걱정까지 끝이 없다.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매형과 누님의 건강이 걱정이다. 이제 누님은 나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친인척, 지인들의 병고(病苦)나 사고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커덕 내려 않으며 걱정과 불안이 앞선다. 이처럼 노년의 새로운 불안은 그칠 줄 모른다..

내가 만난 많은 앨버타 한인 동포들이 한국의 정세 불안, 앨버타 경제 불안의 이중고를 짊어진 채 새해를 맞아야 하는 불안 때문에 힘들어한다. 공통점은 진보 정치가들이 바꿔놓은 <소득 분배 성장 포플리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새해에는 더 허우적거릴 것이라는 예단 때문이다. 어느 은퇴한 회계사가 자택에서 스물 비즈니스 파산 전문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주 자택 사무실에서 만났다. 늘 말끔하던 책상이 산더미 같은 서류로 지저분하다. 

요즈음 한국을 방문한 지인들이 인사 차 가게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간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기 주위에는 모두 잘 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더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던 분들이,  지금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전한다. 늦은 밤에 아직도 큰 기업을 경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기도 안산 공단 안에는 15,000여 공장이 상주하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공장을 지은 이후로 매일 10여 개 이상의 공장들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자기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하소연하며 이민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과 앨버타 정부가 진보정권으로 탈바꿈한 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는 시련은 엄청나다. 한국이나 앨버타 주정부가 아포리아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새해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점철된 현실이, 막막하고 답이 없다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아포리아>,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막혀 희망이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 용어이다.

이 절망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해가 밝기 전, 남들 탓하기 전에 나를 성찰한다. 인생의 길이 막혀 불안할 때 나는 인문학에 길을 찾고 해답과 위로를 받는다. 새벽 묵상 후, 키게로의 <노년에 관하여> 책 한 권을 단숨에 읽고 난 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탐독하며 반나절 시간을 보냈다.

<노년에 관하여>

키케로는 노년의 편견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반박하고 해답을 제시한다.

'▶노년에 몸이 쇠약해져도 큰일을 할 수가 있다. 

인생의 큰일이란 체력이나 민첩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명망력), 판단력에 의해 노인의 몫인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있다. 

▶사랑의 봉사활동이나 농사일 등 꾸준한 활동으로 몸의 퇴화를 방지한다. 

인간의 힘은 매사에 자기 힘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체력이 달리는 것을 인정하되, 노년으로 갈수록 굴하지 않고 팽팽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노년의 쾌락 욕구 감퇴는 오히려 노년의 가장 큰 축복이다. 

정신 계발이 활발해서 인간의 쾌락이 모든 행위의 기준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나 영혼은 불멸한다는 자신감으로 노년을 맞이할 것.

알랭 드 보통 <불안>.  

'삶이란 불안을 떨쳐내면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펼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다.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분야별로 나누어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고대 그리스 행복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자주 인용한다. 섹스, 돈. 명예가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궁극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우정: 진정한 우정의 친구로부터 나누는 사랑, 외로움을 극복하는 진정한 우정이 필요하다. ▶독립: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주인의식을 갖고 직장과 상사로부터의 자유로운 독립으로 일상이 시작되어야 한다.

▶생각: 고요한 시간에 홀로 차분하게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번잡한 시간에 일어난 불안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 

부와 돈과 명예의 불안을 넘어서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역설한다.

오늘도 불안의 파도가 밀려오면 필사적으로 파도를 타고 넘을 것이다.

갈수록 어려움과 힘든 일이 늘어나고, 상처가 많아도 스스로 치유해야만 한다. 갈수록 부족함이 많아도 최선을 다해 어깨를 쭉 펴고 걸을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들에서 참 행복이 있음을 깨닫는다. 얼굴의 주름이 늘어 걱정하는 불안보다는 마음의 주름을 펴는 연습을 하는 하루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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