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지난 주일 오후(23일), 운정(雲情) 박영미님이 오랜 병고(病苦)끝에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으로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서둘러 낙엽 보내고 / 홀로선 나무 밑에 홀로 앉아 / 귓뒤로 넘겨보는 / 늦가을 바람은 찬데 / 돌 틈에 떨어져 있는 잎새 하나 / 노핳게 채색된 메이플리프 / 먼저 떠나간 잎처럼 /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 / 그 작고 애처로운 몸으로 / 홀로 우는 모습이 가슴 아파서 /목이 터지도록 쳐다보는데 / 저만치 낮은 하늘엔 / 저녁 노을 붉게 타고 / 힘든 하루 끝 거친 손으로 / 마지막 잎새를 집어 / 책갈피에 끼우려니 눈물이 난다. / ( ‘마지막 잎새‘ 박영미- 2004 열린문학 시인등단 당선작품 중에서)
운정은 생전의 그의 시와 문학작품들 가운데, 유독 가을의 낙엽과 비,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늘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럴 겁니다. 그 힘들었던 여름을 참아내시고 그토록 애절하게 노래하며 기다리던 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따라 함께 세상과 멋진 이별을 하셨으니 더욱 그리워집니다.
운정과 저는 캘거리문학 활동에 관한한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2003년부터 몇 년 간 캘거리 문인협회에서 문학활동을 함께했습니다.
2004년 4월, 한국의 격월간 문학잡지 〈열린문학〉을 통해서 운정은 시 부문에서, 저는 수필 부문에서 신인상 당선 작품으로 함께 등단을 한 후, 서로 작품들을 평론하며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운정의 시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애송도 하고 외우기도 했습니다.
운정의 시에는, 삶의 굽힐줄 모르는 도도한 기개가 흐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픔을 영혼의 고통으로 절규하며 갈아내는 은유적인 시어들이 삶의 무게에 더해지며, 깊은 질량의 표현들을 사랑했습니다.
사그락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가 좋아 부군과 함께 산책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길섶의 풀 한포기, 사금파리 한 조각에도 깊은 애정으로 관찰하곤, 소스라친 감정으로 글을 쓰곤 했습니다.
운정은 언젠가 책으로 엮을려고 그의 블로그에 많은 글들을 저장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유작으로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운정의 시에 대한 열정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창작활동을 계속하다가 1973년 캐나다의 이민 생활 중에서도 문학활동이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우수한 시 창작활동이 제16회 허난설헌문학상(2005년)을 수상하고 이어서 한국 YTN글로벌 TV우수작으로 선정되는 등, 알버타저널 편집인과 병마와의 힘든 삶 속에서도 시와 수필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재작년 늦여름에 안길웅 내외분을 저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텃밭에서 기른 대파, 상추, 연근 잎 등으로 식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었는데, 건강이 매우 호전되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애도의 글을 쓰고 있으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 어머니께 사랑 받는 것 / 아이를 키우는 것 / 가정을 돌보는 것 / 그리고 / 시를 쓰는 것 / 아 그렇지 /세상을 그저 / 그렇게 살아가는 것 /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 어머니가 나를 사랑 하는 것 보다 / 내가 어머니를 더 사랑 하는 것 / 인생여정 / 아이처럼 되는 것 / 욕심을 가슴에서 버리는 것 / 그리고 죽지 않은 시를 쓰는 것 / 아 또 하나 / 헛 세상을 살지 않는 것 / 주어진 대로 / 허물없이 살다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 / 가는 것 (‘어느 여시인의 고백’ 글/박영미)
늦가을 들꽃
산책을 나갔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코스를 택했다 바람이 쌀쌀하여 운동복을 추스린다 아침이 토해낸 서리에 젖은 잡초, 그 까칠한 표정이 사르락사르락 바람에 일어서기를 하고 있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들꽃 하나, 홀로 되어 더디 걷는가? 역경에 소스라치는 소리도 없이 눈부시게 피어있다. 침묵이 침묵으로 시들어도 깊은 뿌리는 매년 겨울을 남아.......( 글/박영미. 블로그 ‘사금파리’ 메모 중에서)
캘거리 문학계의 큰 별이셨던 박영미 시인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의 숭고한 영혼의 노래들은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우리 문인들 가운데 영원히 머무르며,삶에 지치고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따사로운 위로로 우리를 지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운정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주의 날개 밑에서 편안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