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추억, 치유의 경험
by Reporter | 17.06.28 21:19 | 19,020 hit

청야 김 민식(캘거리문인협회)

까치가 성장하면, 6살 정도 아이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지례짐작으로 매우 영리한 새 라고 단정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까치가 마을 어귀에서 깍깍 울어대면, 옛 어른들께서는 할머니가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다고,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하셨다. 텃새인 까치가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의 표시로 울어대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조류 전문가가 아니지만, 까치에 관해 수집한 많은 자료들 반복해서 읽다가 보면 나는 어느 듯 수많은 이론과 체험을 곁들인 전문가가 된다. 까치는 영악하고 상서(祥瑞)로운 새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일연의 사국유사 〈‘탈해왕의 지략’〉 편을 다시 펼쳐본다.

헉거세 왕에게 고기를 잡아 바치는 배꾼의 어머니가 바닷가 저 편, 바위 같은 물체에서 까치 떼가 모여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이한 생각에 노를 저어 가보니, 배 척이 있었고, 그 안에 길이가 20척, 너비가 13척이나 되는 궤짝이 있었다. 육지로 운반해서 열어보니, 비단 보화와 알 하나가 있는데, 알에 손을 갖다 대자 옥동자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성장해서 탈해왕이 되었다는 설화를 읽다가, 문득 캘거리 까치, 그중에서도 한동안 유심히 관찰하곤 했던, 사가나피 골프장 까치들과의 추억에 잠긴다.

10여 년 전 쯤 일이다.

골프장 슈퍼바이저 Jim과 어느 한가한 날, 커피를 함께했다. 만날 때마다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오래 근무한 경력이 말해주듯, 골프장 내의 생태계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신명이 나서 떠든다.

골프장 넓은 경내에는 까치, 코요테, 청솔모 간의 생존 싸움이 치열하다.

이들의 싸움은 전략과 전술이 담겨져 있어 흥미를 더한다. 어느 해인가. 까치 알을 무척 좋아하는 청솔모가 개체 수가 늘어나자, 까치집들이 마구 습격을 받아 피해가 막심했다. 그러니 까치의 개체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코요테는 청솔모 등을 잡아먹는다. 청솔모의 영특함도 까치 못지않다. 멀리서 코요테가 나타나면 나무 뒤에 얼른 숨는 연습이 잘 발달해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하루는 까치가 코요테 보는 앞에서 앞장서 날더니, 청솔모가 숨은 나무 뒤에서 펄떡거린다. 이것을 알아챈 코요테가 잽싸게 사냥을 한다. 성공률이 매우 높다. 청솔모를 죽이는데 코요테를 이용한 것이다. 그해 청솔모 구경하기가 힘들어 졌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 코요테가 골프장 길옆에서 차에 치여 죽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사슴이나 곰들과 마찬가지로 야간 불빛에 가려 치어 죽는 줄만 알았는데 Jim은 대낮에도 차에 달려들어 죽는 일들이 있다고 한다. 그건 자살이라고 단정한다. Jim이 하루는 골프장 경내의 까치집에서 까치를 꺼내 물고 내려 오는 코요테를 보았다. 까치들은 반경 내에 군집을 이루며 생활하기 때문에, 효조(孝鳥)로 알려진 까치가 보살피는 늙은 까치라고 추정했다. 그 이후로 까치들은 코요테를 발견한 즉시 2인 1조가 되어 따라다니며 괴롭힌다고 했다. 그 광경은 나도 여러번 목격했다. 구역을 벗어나면 다른 조의 까치들이 교대로 인수인계하면서 처절하게 괴롭히는 엄숙한 장면들이다. 그 이후로 죽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어느 늦가을, 우리 일행은 경기 중에, 까마귀와 까치가 골프장 철조망을 경계로, 집단 영역 싸움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수십 마리가 넘는 규모가 큰 싸움판이다. 다른 홀로 이동할 때까지 전투장을 방불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까치가 까마귀를 철조망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밀고 밀리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결국 까마귀가 물러간 후, 주위에 정적이 감돌고 평온을 되찾았다.

까치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위력이 있다고 믿는다. 까치는 영물(靈物)이다. 서로 소통은 할 수 없어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어 즐겁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던 죄책감의 우울증 때문에, 몇 해 병치레로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해에는, 일출을 맞으려 인근의 민둥산으로 차를 몰고 간다. 민둥산 교회언덕 너머, 멀리 로키 산마루들이 보이고, 탁 트인 광야의 찬 공기로 젖은 가슴을 씻어내면, 머리가 맑아지며 치유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영하15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강추위이지만, 아침햇살이 로키 산마루를 적시고, 이내 주위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인다. 백설의 찬란한 금빛 향연이 시작된다. 십자가와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온통 황금빛 물결로 출렁인다. 공교롭게도 그 시간, 저 멀리 공중에서는 황홀항 광경이 펼쳐진다. 우연의 일치인가.

멀리 사가나피 골프장 주위의 공중에서, 큰 무리의 새 떼들이 주위를 빙빙 돌며 선회하고 있는 것을 여러 해 목격하곤 했다. 까치, 까마귀 아니면 갈매기이리라. 그렇게 추측하며 몇 해를 보낸 어느 해, 일출을 보는 둥 마는 둥, 새 때의 광경에 취해 그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새 한 마리가 무리를 빠져나와 이탈해서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더니, 내 옆의 마른 나뭇가지위에 사뿐히 내려 않는다. 영물이 아니고서야 내 앞에서 어찌 그런 광경을 펼칠 수 있겠는가.

까치다!

“나야 나! 나를 몰라봐요?”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움직이면 도망갈까, 나는 동상처럼 언 몸으로 미동도 않고 바라보며 서있는데,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강추위 에서도 흐르는 눈물만은 뜨겁다는 것을 그제야 처음 느껴 본 것이다. 그 까치는 한참을 있다가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그해 새해 일출은 영화 속의 명장면처럼 평생 잊을 수 없다.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환희가 아름답듯이, 천국은 고통과 슬픔의 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보인다. 홀로 서있는 고독함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새해 첫날, ‘내가 너를 치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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