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정의
by Reporter | 19.09.25 11:53 | 14,724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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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금주 월요일, 장장 11시간 동안 생중계된 한국의 조국 법무장관 가택 압수수색 생중계 방송을 시청했다. 유명 유튜브 방송의 유튜버 두 명이, 교대로 서울 방배동 조국 법무 장관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진을 치고 생중계하는, 젊은 기자의 열정에 몰입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잠자리에서 소형 노트북을 켜놓고 시청을 하다 보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10여 분 이내 스르르 잠이 들게 되고 얼마 후 화면이 자동적으로 꺼지게 장치했다. 수 년 간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이라 마치 수면제 역할을 하듯. 나에게는 노년의 복이라 여기며 즐겼는데, 이 날은 가택 수색이 끝이니는 7시간여 동안 긴장하며 날밤을 샌 것이다.

지난주 우연히 안길웅 발행인을 만났다. 

산뜻한 복장의 노신사로 변신한 건강한 체취가 가을을 머금은 듯 젊어 보인다. 평소에 정의의 개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분이라 반가운 마음에서 칼럼을 쓰기로 약속했다. 한국에서 다시 회자 인구(膾炙人口). 되는 '정의'에 관해 글을 쓰겠다고 선 듯 제안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 마이클 샌들의'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 is the right thing to do’·2009)​를 골랐다.. 구매한 300여권의 e-book 중에서 제일 끄트머리에 밀러 있던 책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형형 색색 색갈로 밑줄이 깨알같이 그어진 것을 보면 꽤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영어권에서 8만여 권이 팔려 꽤 많이 알려진 책이다. 

한국에서는 젊은이 들을 중심으로 200 만권 이상이 팔렸는가 하면, 2012년 연세대 노천극장의 마이클 샌들의 강연에서는 14000여 석의 좌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책이다. 가히 폭발적이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요즈음 조국 법무장관 사태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샌들 철학교수의 책은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의외로 간단 명료하다. 그러나 어떤 대목은 손가락으로 혜아려 짚어가며 이해하려고 해도 명료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정의의 개념에 관한 정답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전 철학자들의 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며 정의의 개념을 전개한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제러미 밴담(1784~1832)으로 부터 시작되는 공리 주의, 존 롤스(1921~2001)의 평등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 아리스토 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을 열거하며 전개하는 공동체주의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리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궁극적으로 공동체 주의에서 정의의 대안을 시도하며 설명한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정의론을 주목한다. 건강한 공동체가 국민의 행복을 지켜주어서 공동체의 연대나 의무를 강조한다. 정의는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역설한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존경, 덕망, 건전한 등이 서로의 갈고닦음과 논쟁, 갈등을 통해, 보다 높고 합당한 존경이나 효과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정의라고 제안한다. 정의는 결코 중립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공리주의와 개인 자유의 관점에서 주창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공동체주의를 제안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이나 원칙을 정립하기가 힘들어 이론을 벗어난 관념적 이상적 요소로 머물 수가 있다. 극단적 공동체 우선주의는 명분은 화려하나 자칫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 자체에 대한 올바른 개념, 무엇이 옳은 정의의 개념인지, 단장적인 답을 도출하기가 힘이 든다.

공동체 정의란 실현과 이해 관점에 따라서 이데올로기 충돌을 몰고 온다. 개인의 희생쯤이야 가볍게 간과한다. 소득 분배의 정치로 성장을 주도하며 사회주의를 꿈꾸는 것이 정의인 듯한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조국 장관은 도덕적인 부끄러움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본인은 못 느낀다. 도덕적 결함쯤은 아랑곳없다. 스스로 지닌 정의에 대한 강한 관념은 누구도 꺽을 수 없는 소신이 되어 쇠락(衰落)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추진력,옥안 영풍(玉顔英風)의 준수한 외모에 통치의 정점을 두루 겸비하고 무한질주하던 중년의 정치가가 부패와 거짖과 욕망의 덫에 걸려 괘물의 형상을 지닌 채 스스로 변해가고 있다. 강제로 끌어내리지 않는 한,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스스로가 구축한 정의의 고정관념이 자신을 옥죄고 있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공동체를 꿈꾸는 결과물인가.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집을 급습, 가택 수색을 하는 사상 초유의 광경을 밤새 목도하며 그릇된 정의로 무장한 지식인이, 도덕적이고 존경받는 아벼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순간들을 보며 두려움에 잠긴다.

다른 사람의 정의관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 깊어가는 가을밤에 나는 심연의 양심에 기댄 채 심각한 고민에 잠긴다.

이제 정의 앞에 서면 마음은 한없이 겸손해 진다.

가을 아침 맑은 이슬을 머금은 소슬한 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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