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이 선생님!
지난 8월 29일 오후 7시 Eden Brook Memorial Gardens에서 열린 ‘고 이창호 집사 장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회 집사님직분을 가지셨지만 평소의 ‘이 선생님’ 호칭이 더 친근해서 이렇게 불러 봅니다.
이민 사회에서 드물게 오래 장수하셨고 생전에 후한 인덕을 많이 쌓으셨기에 많은 조문객이 참석하셨습니다. 최창선 담임목사님이 여름휴가 중 이신데도 집례 인도 차 급히 참석하셔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말씀 중 최근에는 성경을 많이 읽으셔서 책장을 넘기는 부분이 손 때 자국으로 너덜너덜 손상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자녀 유족 분들과 별세의 슬픔과 아쉬움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였습니다. 노환으로 인한 잔병치례 외에는 별다른 병 치례가 없으신 가운데 급작스럽게 별세하셨기에 슬픔을 나누었지만, 2009년 7월 캘거리한식당에서 구순생신잔치를 하실 때만 하더라도, 몇 분들이 백수잔치에 초청하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진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니 슬픔 중에서도 아쉬워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생전의 복스러운 생애를 감사하면서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족한 것을, 지나친 욕심이 부끄럽습니다.
지난번 한인의 날 행사에서 캘거리한인라이온스클럽 자선 간식판매대에서 해마다 자리를 지키고 봉사하시던 이민수 아드님을 찾아뵙고 선생님의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아버님은 귀가 안 들려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뿐 시력이나 지팡이를 짚고 걷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십니다.” 평소 신문 읽기를 좋아하시는 것을 아는 지라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구글 마이크를 클릭하고 ‘일간신문’하고 말을 하면 쉽게 원하는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퇴원해서 편안하실 때 찾아뵙겠습니다.“ 덕담을 나누었는데 별세가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아 2006년 새벽골프를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시절 고 김태석 장로, 김용미 장로 이 선생님 그리고 저 4명이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고정 선두그룹들은 플레이 속도가 빨라 자치기하듯 18홀을 3시간 남짓이면 끝내고는 차를 마시면서 한담으로 오전 소일을 했습니다. 김태석 장로님이 지병으로 중단하면서 4년여를 해마다 70여회 이상을 쳤으니 보통 인연은 아닙니다.
개장을 하는 동안에는 눈이오나 비가와도 참석을 함께했습니다. 언젠가 한 지인을 만났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아침에, 한 지인이 사가나피 골프장 길옆을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한국교민 1팀만이 경기를 하고 있어 정신없는 사람들이라고 아내에게 흉을 봤는데 그게 우리 팀이었습니다. 김용미장로님은 경기도중 눈길에 미끄러져 며칠 쉬는 어간에도 우리 둘의 새벽 골프는 계속 됐습니다. 언젠가는 잠들 무렵 혈압이 높아 책상위에 안경과 시계. 소지품을 가지런히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이튿날 새벽에 나오셨습니다. 극성스러운 넘어선 만남이었습니다.
삼사년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두 분의 지나 온 삶의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나도록 그칠 줄을 모릅니다. 특히 이 선생님은 증손자에 이르기 까지 가족 사랑과 자랑이 대단하셨습니다.
구순이 되도록 90타를 유지하며 간혹 200야드 장타를 휘두르셨던 장타력, 까치의 맞선 광경, 코요테와 까치의 싸움, 까치와 까마귀의 집단 난투극, 봄날 아침 코요테 새끼 사냥 연습훈련 등 새벽 골프를 이용하는 덕분에 목격하고 감탄했던 황홀한 추억의 광경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