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12월의 마지막 주간(週間)은 늘 아쉬워. 애틋한 회상으로 이민시름을 달래곤 하는데, 그러한 망중한을 보내기에는 엄부렁해서, 남은 세월 아무 탈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초유의 유가 파동으로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앨버타의 수많은 교민들이, 젊은이들이, 직장을 잃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앨버타를 떠나는가 하면, 운영하던 스몰비지니스를 처분하고 불안해하는 교민들이 늘어간다.
‘죽으나 사나 내 형제여 당신의 그림자는 길고 여위다
그 변치 않는 그림자를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 넣고 천정이 높은 파티에 참석한다.
밤에는 구겨진 내 그림자를 꺼내어 잊어버린 깃발같이 흔들어본다.‘ (마종기; 두 개의 일상 중에서)
유가 파동의 아픈 상처만큼이나 전례 없이 혼란스러운 한국 정치의 진흙탕소식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다가 분노가 넘쳐 화면을 돌려버리기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러다가 조국이 그리워 슬그머니 채널을 다시 돌리곤 하던 가슴이 아픈 병.신(丙申)년이다.
이젠 쓰레기통에나 버려야할 사소한 교리해석 때문에 처절하게 싸우는 종교전쟁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파리 목숨처럼 죽게 만들었다. 투병 중인 이해인 시인의 고백처럼 김장독을 땅 속에 파묻듯 지난 자신을 온통 땅속에 파묻고 서서, 새해에는 하늘만 쳐다보며 살고 싶다.
블룸버그통신은 2016년을 한국을 ‘끔찍한 한 해’(annus horribilis)로 표현했다.
우리 교민들에겐 병.신(丙申)년 국치(國恥)사건으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니, 빨리 잊고 싶다.
이래저래 우리 앨버타 교민들에게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힘든 한 해다.
‘어서 가라 옛날이여! 어서 빨리 오라 새날이여!’
수필가 찰스 램은 오는 해를 맞는 기쁨보다는 가는 해(지난해)만 되새겨 보며 기분 좋아한다고 말한다. 중년의 나이에 새해, 새것이 두렵고 겁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노년의 나는, 떠나는 것들은 재촉해 보내고 찾아오는 것들을 어서 반겨, 새로운 내면의 힘으로 삶을 창조하고 싶다.
올해엔 저마다 가슴의 응어리를 간직한 채,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넘쳐날 것이다.
한국교회만이 치루는 유일한 자정예배 행사여서 더욱 무겁고 엄숙할 터이지만, 예배 후엔 기쁨과 행복의 기대로 충만해질 것이다. 새해의 행복과 평화를 소원하며,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건네는 정유(丁酉)년 새해 첫 인사는 새벽닭의 세찬 울음처럼 앨버타의 교민들의 신년 새벽을 깨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대로 이어오는 한민족 저력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 나의 서재 책상에 향기 좋은 촛불하나를 켜고 두 손을 모아 주님께 기도하고 싶다. 여의치 않으면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 함께 참석해 묵상으로 나의 소원을 빌고 싶다.
주님! 새해아침이 밝아오면 안락(安樂)만이 나의 노년의 목표가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그것은 나의 인생종말이 올 때 은총으로 주시고, 평탄(平坦)보다는 주님의 주신 가혹한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지나온 나의 운명들을 포근히 감쌀 줄 알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더욱 강해져서 조그마한 자부심이라도 스스로 지키게 하소서.
노년이라는 이유로 움츠려 들고 작아지지 않게 하시고 안락과 쾌락을 버리고, 나약한 인간을 넘어 나와의 치열한 싸움으로 보다 강한 나로 만드소서.
일상에서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곤란(困難)에 대담히 맞서서,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참다운 나’가 되게 하소서.
새해아침 일출을 보며, 외면이 유명해 지기 보다는 나의 내면이 더욱 탄탄해져, 부모님이 주신 기품을 잃지 않고 끼끗하고 준수한 삶을 살도록 다짐하게 하소서.
나는 나의 의지가 약할 때 평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했습니다.
삶이 힘들어질 때 불평과 오두방정을 떨었습니다.
이럴 때면 나의 생명력이 약한 것을 깨닫게 하소서.
아직도 일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지만, 부유(富裕)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지마소서.
일용할 양식이 덜하면 덜 쓰고, 풍요하면 더 쓰게 하소서.
내가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게 하소서.
그 길이 힘들더라도, 목표를 향해, 칠흑 같은 한밤중이라도, 오늘도 피자 배달가방을 들고 한파(寒波)의 눈길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소서.
그러한 아슬아슬한 삶이 주는 행복은, 고난과 고통을 딛고 일어 설 때만이, 참다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고난을 견디어 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고난을 사랑하고 겁내지 않게 하소서.
새해에는 어머니의 신앙처럼 예수와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으로,순간순간, 하루하루의 삶에 소중한 밑줄을 긋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