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2016년 10월 13일,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며 고은 최근시집 『초혼』과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엘리스 먼로의 최근 단편 모음집 『디어 라이프』 2권을 e-book에서 번갈아 읽으며 답답함을 추스르고 있었다.
뜻밖의 이변이 일어났다. 포크록 가수로 저항의 메시지를 노래한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75세)이 올해의 노벨문학상수상자로 발표되자, 미국역사상 23년 만에 돌아온 수상의 영광으로, 미국은 물론 대중음악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선정 놀라움에 팽팽한 찬반논쟁이 누리소통망(SNS)을 통해서 끊임없이 확산되고, 새로운 변화, 시대정신에 대한 사유의 글들이 분주히 올라오고 있었다. 문학상 수상자에 대한 평가로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전례가 또 있을까?
그동안 노벨문학상 순수성 때문에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 일부 문학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기존 질서 속에서 과감히 일탈하는 가히 혁명적인 선정이다, 수상 금액 11억 여 원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일반 대중들에게 관심이 점점 멀어져가는 듯한, 노벨문학상에 대한 위기상황의 타개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난다.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 지난 5000년을 돌아보면 호머와 사포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연주를 위한 시적 텍스트를 썼고, 밥 딜런도 동일선상에 있다", '귀를 위한 시'라고도 칭송한다. 그동안 수상자들 선정에 대한 짤막한 언급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긴 부연설명이 이를 증명하듯, 다소 의외였던 선정 이유를 밝혔다. 15년 이상을 수상자 후보 명단에서 맴돌 더니, 시대정신이,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랜 장고의 고심 끝에 내려진 결단이자 현실적인 고육지책이리라.
그러나 노래하는 음유시인(吟遊詩人) 밥 딜런의 노래 가사는 미국의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다룰 만큼 이미 그 문학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딜런을 읽고 공부하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캘거리대학 영문학교수 Bart Beaty도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다”고 평한 뒤, 내년에 밥 딜런에 강의를 시작할 것을 이미 두 달 전에 밝히기도 했다.(The Calgary Herald 10/13)
록 50년 역사에서, 밥 딜런(Bob Dylan)은 비틀스(The Beatles)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밥 딜런이 남긴 발자취는 어느 평자들의 지적대로 차별성(差別性)이 아닌 특별성(特別性)에 기인한다. 전설의 록스타 4인의 ‘록의 스타일 확립’ 이라는 몸체는 서로 엇비슷할 것이다. 3인의 몸체가 외양이라면 그는 ‘내면(內面)’이다, 은유적인 가사가 던지는 저항의 메시지 때문에, 딜런의 음악과 노래들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평을 한다.
‘실적주의와 상업성’을 논하자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전설의 위상에 걸맞게 비틀스, 엘비스, 롤링 스톤즈는 수없이 음악 차트 순위 !위 히트곡을 발표했으나. 엘런은 ‘Like a rolling stone’이 겨우 2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어울리지 않는 사치이다, 자기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릴 적부터 시와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밥 딜런은 이미 2004년 그가 직접 저술한 자서전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퓰리쳐상,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하고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됐다.
자서전 『Chronicles』을 읽는 중이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과 내면의 고백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자전적 이야기 ―삶의 질곡과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들이 솔직한 내면 고백으로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진정한 창작과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패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고 피력하는가하면 기독교인으로 개종 후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지 말라는 반전 시위대와 히피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까지 준비했던 사연들도 실었다.
그의 독특한 침묵의 내면수행과 그간의 기행(奇行)으로 미루어 어쩌면 노벨상 수상식에 불참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기독교 개종 후 나온 앨범들에 대해 “밥 딜런의 노랫말은 어쩌면 고매한 신학자들의 언어보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과 지식을 담아낸 살아있는 카테키즘(교리문답)” ―기독교문화운동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사람이라 불리게 될까/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모래에 앉아 잠들게 될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영원히 그것들이 금지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답을 알고 있다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중에서)
지금 나는 ‘Knockin On Heavens Door’ ‘A Hard Rains A Gonna-Fall’을 듣다가 이연실의 번안가요 ‘소낙비’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교통사고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30여 년 전 기독교로 개종한 후 음유시인(吟遊詩人)인 밥 딜런의 노래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엘보우 강변 한 모퉁이에서, 외롭게 아침이슬을 머금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사금파리 한 조각처럼, 노래너머 반짝이는 깊은 음성을 들을 수 있어 나는 시나브로 밥 딜런의 저항과 은유의 노래들을 좋아할 것 같다.(이 글은 2017년 10월 16일자 주간한국 3면 칼럼에 게제된 글입니다.)
금년 5월 교민 분들의 다양한 삶의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인터넷 공간에 전시하고, 공유하는 작은 무료 인터넷 커뮤니티를 개설하였습니다. 청야님을 이 곳에 감히 초대하오니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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