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감세로 경제를 살리고 부자 증세로 성장 재원을 마련한다는 캐나다 자유당 정부의 공약이 구체화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지난 4일 캐나다 의회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중산층의 세율을 낮추고, 사회기반시설에 재정을 투입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감세와 사회기반시설 투자로 인한 정부의 재정 부담은 부자 증세로 덜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영연방의 전통대로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이 의회에서 대독한 차기 정부의 주요 현안 과제에는 대마초(
마리화나) 합법화 방안을 비롯해 2만5000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 수용, F35 구매 철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대한 정부 공약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의 8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분야는 경제였다. 이 매체는 중도우파 성향인 자유당이 지금까지의 교리였던 재정균형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인 재정 투입과 중산층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이날 발표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연간 소득이 4만4700~8만9400캐다나달러인 중산층의 세율은 현재의 22%에서 20.5%로 낮아진다. 중산층 감세로 줄어드는 세수는 부자 증세로 메우게 된다.
현재 캐나다는 13만8586캐다나달러 이상의 소득을 버는 가구에 29%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과세 구간을 신설해 연간 20만캐다나달러 이상을 버는 부유층에 33%의 세율을 매기기로 했다. 연간 20만캐다나달러를 버는 부유층들로서는 세율이 29%에서 33%로 크게 오르는 셈이다.
올해 캐나다의 실업률은 7.1%, 연 경제성장률은 2.3%다. 지난 1일 공식적으로 경기 후퇴에서 빠져나왔지만 무역적자 폭이 커지고 있고 제조업 생산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 부진으로 석유 등 원자재 값이 하락하면서 캐나다 경제의 성장축인 앨버타 주에서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 2일 캐나다 중앙은행이 “국내 수요가 부진하고 유가 폭락으로 기업 투자가 미약한 수준에 있다”며 3회 연속 금리를 동결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고육지책이었다.
트뤼도 총리는 미약한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산층 감세를 추진하는 한편 사회기반시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향후 10년 동안 다리와 주택, 대중 교통 등 사회기반시설에 600억캐나다달러를 투자하기로 해 원주민과 환경론자, 연금제도 개선을 원하는 은퇴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신규로 확정된 사회기반시설 투자액은 이전 보수당 정부가 확정한 650억캐나다달러에 추가되는 액수다.
이번 정책 발표는 중산층 세율 인하, 상위 1% 부유층 세금 인상, 원주민과의 관계 정립 등을 추진한다는 자신의 선거 공약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야권은 자유당의 파격적인 경제 정책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성향의 야당인 신민주당은 이날 공개된 정부의 정책 과제에 은퇴 연령을 67세에서 65세로 낮추겠다는 공약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직전 여당인 보수당의 공세는 더 날카로웠다. 보수당의 2인자 드니 르벨은 현지 언론에 정부 공약이 “돈을 쓰는 방법은 많이 열거한 반면, 정부 재정을 확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비판과는 달리 재계와 시민사회는 정부 계획을 반기고 있다. 퀘벡주 상공회의소 대표인 프랑수아즈 베르트랑은 “이번 연설에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정부의 바람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캐나다 납세자 연맹의 이사 아롱 위드릭은 현지 방송 CTV에 출연해 “정부가 큰 약속을 한 만큼, 이를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고 말했다.
[출처: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