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밤(현지시각) 캐나다 북부 옐로나이프 오로라 빌리지 상공에 펼쳐진 오로라. 오로라 중에서도 활동 수준이 최고 수준인 ‘서브스톰(substorm)’의 장관을 연출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시인의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깊고 검푸른 밤 하늘에 초록빛 형광색 불길이 들불처럼 일렁이는 듯했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불길은 여기저기서 마구 솟구쳐 타오르다가 어느새 나란히 어깨춤을 췄다. 빛줄기가 소낙비처럼 내리꽂히는 것도 같다가, 저 혼자 속주를 쳐대는 피아노 건반처럼 굽이치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매혹적인 여인의 시스루 드레스 자락이 물결치는 것 같았고, 또다른 순간에는 거센 파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휘몰아치는 듯도 했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될 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빛의 향연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치켜든 채 와- 와- 소리만 내고 있었다.
지난 7일 밤(현지시각) 캐나다 북부 옐로나이프 상공. 북위 62도 지구상에서 올 겨울 최대 규모의 우주쇼가 펼쳐졌다. ‘자연이 연출하는 최대 쇼’라 불리는 오로라의 대장관이다. ‘오로라’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만화영화 ‘오로라 공주’로 귀에 익은 단어다. 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태양이 폭발하면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끌려 내려오다 대기권의 공기 입자들과 충돌해 빛을 내는 현상’이 오로라의 정확한 설명이다.
하지만 먼 옛날 누군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이야기는 완전 딴 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 문득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누군가는 벼락처럼 쏟아지는 섬광에 눈이 부셔 그 자리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행여 용감한 누군가가 나서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라거나 ‘신의 전령이 내려오는 것’이라고 외쳤다면 대부분 곧이곧대로 믿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지금 태양 폭발과 지구 자기장을 토대로 한 설명도 하나의 스토리이지 않은가. 좀 더 개연성이 높은.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로 20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외딴 곳이었다. 밴쿠버까지 10시간, 다시 캘거리까지 1시간 반, 다시 옐로나이프까지 2시간 반. 지루한 환승 시간까지 합쳐 온전히 하루를 바쳐가며까지 그곳에 가야하는 걸까, 오는 동안 잠시 일었던 회의감은 이 순간의 장면 하나로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함께 간 일행들은 이날 저녁 ‘지자기폭풍(地磁氣暴風·geomagnetic storm)’ 경보가 내려질 때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지자기폭풍이란 지구 자기권의 일시적인 혼란을 말한다. 태양 폭발이 일어난 후 지구까지 날아온 태양풍의 충격파가 지구 자기장을 강타해 일으키는 폭풍이다.
숙소에서 ‘별자리 강의’를 듣고 있다가, 베란다 너머로 푸른 줄기가 춤추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더 참기 어려워졌다.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 관찰지 중에서도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적지다. 오로라 현상이 잦은 북위 62도 지역인 오로라 오발(aororal oval·지구 자기장을 둥그렇게 싸고 있는 오로라)에 속해 있으면서 최상의 관측 조건을 갖췄다. 다른 곳에 비해 접근하기가 쉬울 뿐더러, 바다와 산악 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평원 지역이어서 탁 트인 시야에 전체 하늘이 잡힌다. 낮보다 밤의 날씨가 더 맑아 기상 상태도 최적이다. 10년 간 연 평균 240회의 오로라 관측 일수를 자랑한다.
시내 불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오로라 관찰을 위해 꾸며 놓은 마을이 오로라 빌리지다. 원주민식 주거 막사인 티피가 20여개 설치돼 있고 곳곳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가운데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이 틔어 있어 시야도 거칠 게 없다. 어느 곳에서 오로라가 나와도 전경을 볼 수 있다. 초대형 옥외 극장을 자연 위에다 조성해 놓은 셈이다. 여름이면 거울 같은 호수 위로 오로라가 비쳐 쌍무(雙舞)를 춘다. 지금 같은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눈이 쌓여 설원으로 변한다.
혹한기 동절기에는 수은주가 영하 20~30도 아래로 내려가기 일쑤다. 체감 기온은 영하 30~40도를 육박한다. 하지만 방문객들은 추위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든든한 캐나다 구스 방한복과 방한화가 혹한을 막아주는 덕분이기도 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강렬한 시각적 자극 앞에 피부로 스며드는 냉기는 어느새 뒷전이었다. 아예 눈덮힌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감상하는 이도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이 ‘신의 영혼(Spirit of God)’이라 부른다는 오로라. 그 앞에서는 약은 현대인도 일순간 경건한 ‘신도’가 되고 만 듯했다. 모두가 ‘우주의 티끌 같은 일원’이라는 묵상과 함께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빛의 세례를 겸손하게 내려받는 형국이었다.
이날 밤 오로라는 활동 수준이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서브스톰(substorm)’의 장관을 연출했다. 오로라 서브스톰의 경우, 그 현란함이 육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푸른 빛부터 분홍빛까지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폭풍처럼 몰아치며 밤하늘을 물들인다.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최고의 우주쇼다.
천체 전문 사진 작가인 권오철씨는 삼각대에 받쳐 올린 카메라로 하늘을 정조준해 실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오로라의 장관을 담은 사진은 다시 타임랩스(time-lapse) 동영상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거쳐 그때 그 순간 감동의 광경을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타임랩스 동영상이란 연속 촬영한 사진을 연결해 동영상처럼 보이게 한 것을 말한다. 일정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을 이어붙인 후 정상 속도(real time)보다 빨리 돌려서 보여주는 특수영상기법을 사용한다. 덕분에 장시간 노출이 필수인 극지방의 화려한 오로라나 밤하늘의 눈부신 은하수를 동영상으로 즐길 수가 있다. 권 작가는 같은 순간을 별도의 어안렌즈 카메라로도 촬영했다. 서브스톰은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다시피하기 때문에 어안렌즈로만 전모를 담을 수 있다.
이날 오로라는 지자기폭풍(geomagnetic storm)의 영향으로 특히 격렬했다. 1시간 넘게 수 차례 이어졌다. 현지 관측자들은 올 겨울 시즌 최고의 오로라였다고 했다.
객관적인 지표상으로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오로라에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등급이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서는 인공위성에서 관측한 오로라 오발(aurora oval)의 활동 수준(activity level)을 파악해 1~10단계로 표시한다. 이날 오로라 활동 수준은 레벨 8 이상으로 측정됐다. 오로라 빌리지는 자체 기준으로 레벨 1~5까지 표기한다. 이날 오로라는 최고인 레벨 5로 기록됐다.
최근 수년 사이 오로라는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시기가 11년마다 찾아오는 오로라의 극대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일어나는 폭발로 날아오는 입자들이 일으키는 현상인데, 갈릴레이 이래 약 400년 정도 관측한 기록에 따르면 태양 활동은 11년 주기로 강약을 반복하고 있다.
태양 활동의 극대기가 되면 표면에 흑점이 많이 생긴다. 최근 태양의 흑점 수가 2008년 최소였다가 점차 증가해 2013년경 극대가 될 것으로 예측돼왔다. 태양의 흑점이 많으면 그만큼 태양 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입자도 더 많이 방출하기 때문에 오로라도 더 자주 더 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 시기에 늘 오로라 서브스톰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때그때 오로라 오발의 상황과 현지 기상 조건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관측 확률은 달라지게 된다.
이번 오로라 관측 답사에는 권오철 천체 전문 사진작가와 이태형 (주)천문우주기획 대표가 동행했다. 권오철 작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으로 오로라에 빠져 천체 전문 사진가로 전업한 ‘오로라맨’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2001년 미국 NASA의 ‘오늘의 천문학 사진(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선정됐다. 한국인 최초였다.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이트에도 사진이 실리기도 한다. 세계 유명 천체사진가 33인으로 구성된 TWAN(The World At Night) 일원으로 UNESCO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 2009’의 특별 프로젝트도 수행했다. 2012년 ‘오로라의 신비, 사진-영상전’ 등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신의 영혼, 오로라’를 출간했다.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이태형 천문우주기획 대표는 1989년 국내 처음으로 대중을 상대로 한 별자리 안내서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출간한 인물로 유명하다. 1998년 9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소행성을 발견해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태양 폭발의 시기와 이곳 기상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근래에 보기 드문 오로라 서브스톰의 장관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 오로라란
기본적으로 전기입자들이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발광 현상이다. 태양의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태양풍 속에 있는 전기를 띈 입자가 지구의 자력에 의해 대기권에 진입할 때 일으키는 충돌에 의해 빛을 일으킨다. 이 아름다운 형광색 빛을 오로라라고 부른다. 색은 발생 고도에 따라 다르다. 약 200km~300km 상공의 산소와 충돌하는 경우에는 붉은색, 100km~200km 상공의 질소와 충돌하는 경우는 녹색, 100km 부근에서 질소와 충돌할 경우에는 분홍빛을 띄게 된다.
원리는 다분히 물리·화학적이다. 태양 폭발에 따른 태양풍이 지구로 밀려들 때면 전기성을 띈 입자(=플라즈마)가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한다. 대기 중에는 산소 분자나 산소 원자, 질소 분자 같은 여러가지 물질이 존재한다. 플라즈마는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여러 물질들과 고속으로 충돌한다. 이 과정에서 대기 중 물질들은 에너지를 얻어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여분의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한다. 밤거리를 비추는 네온 사인이나 전광판도 이런 원리에서 생기는 빛이다.
실제로 오로라로 유명한 곳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위도가 높은 지역에 집중돼 있다. 지구도 북쪽에 S극과 남쪽에 N극을 가진 거대한 자석이다. 자석의 힘을 미치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이 자기장은 지구에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풍의 ‘플라즈마’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장벽 역할을 한다.
태양풍에 실려 오는 플라즈마 역시 자성을 띈다. 플라즈마는 지구의 자기장에 진입한 후 자력선을 따라 이동한다. 이 자력선이 지구면과 닿게 되는 곳이 지구 지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관을 씌운 듯한 모습이 된다. 이것을 ‘오로라 오발’이라 부른다. 이 영역에서 오로라가 자주 목격된다. 북반구의 오로로오발은 북위 60도 근처에 형성돼 있다. 알래스카,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옐로나이프 등이다.
오로라가 발생하는 지점은 지구 상공 약 100km~500km 인근이다. 따라서 오로라가 발생하고 있어도 구름이 낀 경우는 오로라를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오로라 체험을 두고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다양한 조건들이 갖춰줬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호사이기 때문이다.
[출처: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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