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월 13일)은 캐나다 어머니 주일, 여전히 넘치는 성령의 풍성함, 활기찬 은혜가 온 성전을 휘감고, 4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 2,000 명이 넘는 교인들과 함께 2부 예배 가스펠 찬양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성전 전면, 3대의 대형 스크린의 반사 불빛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둑 컴컴합니다. 성전 안을 황급히 걸어가는데, 안내 요원이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내 뒤에서 팔을 꽉 붙들었습니다. 전해줄 이야기가 많다고 하며, 예배 후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한 주일은 성전 안 카페의 TV 스크린에서, 또 한 주일은 인터넷으로 생중계 예배 실황을 시청했습니다. 피로 때문에 예배 시간에 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며 교회 소식을 전해 주곤 하는 친구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8년이 넘도록 다니는 서양 교회이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교우 친구들, 자유와 개성이 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사회자 없이 진행되는 예배이므로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의 말씀으로 Ashwin Ramani 부목사의 'One Body'설교 후에 성만찬 예식이 있었습니다. 성찬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면 강단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안단테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연주가 내내 이어졌습니다. 어머니 주일에는 으레 어머니의 믿음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되고, 어머니에 관한 찬송가를 불러야 하고, 성만찬에 관한 연주 '주 달려죽은 십자가' '살아 계신 주 등, 구슬프고 애절한 찬송이나 연주를 들어야 하는 관습에 젖은 나로서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최근에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음악과 영화를 유튜브로 감상하며, 곡의 해설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2악장에 대한 두 가지 해설입니다. 오래전 상영(1967년) 됐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스웨덴 영화 "Elvira Madigan"입니다. 주인공 엘비라와 식스틴 두 청춘 남녀가, 사회적 지위와 연령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아픔을, 초원에서 나비가 훨훨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영상과 안단테 배경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끊임없이 들려주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때문입니다. 음악 애호가들이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애칭으로 "엘비라 마디간"이라 부르기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작곡에 관한 해설입니다.
1785년 29세 되던 해,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도 그 연주회장에 참석했습니다. 안단테의 피아노 왼손으로 연주하는 셋 잇단음표가 아버지 레오폴트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 느린 악장과 같다는 해설가의 말입니다. 아름다운 안단테 연주는 그동안 아버지와의 갈등과 불화의 추억들을 털어내는, 그리고 존경과 사랑을 헌신하는 오마주(존경과 경의)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성공의 정점에서 이 연주로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연주를 듣는 동안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인 볼프강과 아버지 레오폴트의 뜨거운 안단테 연주 화해 이야기입니다.
내가 포도주 잔과 떡을 받아들고, 연주를 들으며 화해 이야기가 생각났을 때,
어머니가 저 멀리 아스라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화해가 아닌 나의 일방적인 회개와 반성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신앙노선의 차이로 오랫동안 골이 깊었습니다. 왜 그렇게 예수를 극성스럽게 믿어야만 하는지, 어머니를 오랫동안 구박했습니다. 피난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부산 국제시장 극장 옆에서 노점 장사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영화 구경을 안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내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나만 부산에 남겨두고 강원도 춘성군 기도원으로 집단 이주하셨습니다. 아침 가정예배를 보면 한글을 겨우 깨우친 어머니는 신구약 주요 성경 구절을 줄줄 외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단 기독교를 적극 비판하는 것으로 보아, 오직 성경 중심의 교리 관음 지닌 숭고한 믿음을 소유한 골수 예수쟁이 권사님이셨습니다.
어머님 제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괜찮다, 내 아들아." 어머니가 주시는 머루주와 감자떡을 받아들며 우물거리며 입속으로 가져갔습니다.
나는 회개를 했는데 어머니는 용서와 화해를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내가 강원도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뵐 때 마다 갈증해소로 담가두었던 머루주 한 잔과 들기름에 범벅이 된 감자떡을 주시곤 했습니다. 꽤 독해서 취기가 확 돌곤 하면 "함께 하산합시다" "이곳이 천국이다. 나는 성산을 지킬란다" 퉁명스럽게 내뱉는 나의 말에, 미소를 띠며 화답하시곤 했습니다.
성찬 예식에 참여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곤 합니다.
성찬식은 예수의 임재와 현존함을 기리고 소망을 간구하는 예식이고, 이천년 전의 예수 성만찬 기본정신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러 가지 신선한 순서로 나에게 자유롭게 감동을 유발하는, 아름다운 용서와 화해의 어머니 주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삶이 피로에 지쳐서 견디기 힘들 때, 어머니처럼 모든 것 내려놓고 안단테 속도로 느리게 걸어가렵니다. 그리고 피안의 세계에서 나비가 훨훨 나는 아름다운 동산을 만나면, 또다시 환희의 눈물로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쬐그만 포도주 잔이 머루주 기운을 품어 내어 취기가 오르게 하는 회개와 눈물의 어머니 주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