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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새벽 단상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9-04-23 (화) 12:30 조회 : 20355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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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젊은 시절부터 부활 주일 아침이면 으레 아침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터라, 오늘도 새벽 4시 전에 깨어났다. 늦도록 식당 일을 끝내고 자정이 다 되어 서야 잠을 청했으니, 선잠에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면, 그다음 일요일이 부활주일로 지내는 관례여서, 올해 부활주일은 매우 따사롭다. 작년에 비하면 20여 일이 늦었고, 내년(4월 12일)보다도 10여 일이 늦어서 그런지 올해는 유독 포근하다.

느긋한 설렘으로, 

모처럼 만들어낸 조용한 시간에 평소 듣고 싶었던 음악을 튼다. 노트북 영상을 열고, 경기 필하모닉의 여성 상임 지휘자였던 성시연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2번 5악장〈부활〉과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4악장〈합창〉화면을 클릭했다. 소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블루투스 (Bluetooth) 스피커를 연결했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한 작은 체구의 성시경의 정열적인 지휘를 좋아한다. 

말러나 베토벤 두 음악가는 생전과 말년에 각종 질병과 수많은 가정의 고통 때문에 이순의 나이가 되기 전에 세상과 이별했으나 생전에 수많은 고통, 질병, 슬픔 등과 싸우며 일어선 사람들이다.

말러는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교향곡에 성악과 합창의 주입을 시도한 수법이 엇비슷하다. 

'내가 얻어낸 날개를 달고 저 뜨거운 하늘에서 나, 날아오르리라. 빛을 향해 세상이 모르는 빛을 향해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일어나라'(말러;〈부활〉2번 5악장 합창 중에서 )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온 세상을 위한 입맞춤을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으니 ....별들이 저곳에 그는 있다' (베토벤;〈합창교향곡〉9번 4악장 중에서)

 말러는〈부활〉의 합창에서 ' 인간이여 다시 일어나라'라고 외쳤고, 베토벤의〈합창〉은 평화와 환희를 노래했다.

아직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이자 존경하는 이어령 박사의 글들을 읽는다. 늘 머리맡에 가까이 두며 삶이 버거울 때 읽는 글들이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컴퓨터 소프트 웨어 다루는 능력이 탁월해서, 서재에 서로 다른 목적의 7대를 연결해서 활용하고 에버노트로 자료 정리를 한다. 나는 감히 흉내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그의 박식한 지성과 화려한 이력에  늘 부러움의 시선으로 글을 읽곤 한다.

지금은 암과 투병 중이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를 읽고, 손자마저도 ADHD로 눈물겹게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또 다른 성장한 손자가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로 귀의한 후 부활의 산증인으로 아직도 일상이 매우 분주하다. 그는 부활의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부활의 신앙' 이란 감성이나 세상의 지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실토한다. 그리고 영성을 넘어 십자기의 복음을 몸소 체험하고 '사랑'을 길을 향해 접근한다.

집을 나선다.

오늘도 새벽 미명에 신발을 신고 밖을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아직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힘에 겨운 생업의 삶이 분주하고 아슬한 삶의 연속이지만, 순간순간을 이기고 건너 뛰려면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 매일 스스로 자문하지 않으면 힘겨운 노년의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이 천국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훌륭한 점을 보고 덕담을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한 이 노년의 시간, 나의 주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수많은 사연을 이겨낸 위인으로 가득하다. 그런 이유로 노인회와 무궁화 합창단에 가입했다. 아직도 남은 짧은 인생을, 거드름을 피우며, 인생을 즐기자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애써 피한다.

아, 로빈 새가 노래를 하고 있다.

가슴이 울컥거린다. 앞 집 지붕 꼭대기 위에서 우리집 로빈 새가 짝짓기 구애의 노래를 하고 있다. 얼마나 노래했는지 지치고 쉰 목소리다. 4년 동안 헤매다 기적적으로 생환해서는 꼭 그 자리에서 노래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서 노래한다. 새집으로 이사 온 두 해 동안은 로빈 새 구경을 하지 못했다. 로빈을 위해서 5년생 블루베리, 체리 나무, 해당화 등 20여 구루를 심은 지 7년이 지났다. 작년에는 그 많은 새들이 지나가며 따먹은 한참 뒤, 늦가을이 되어서 큰 광주리에 가득 수확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활 주일 전후로 새벽이면 서재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로빈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책상에서 졸며 깨며 무작정 기다리곤 했다. 그러기를 20여 년이 넘었으니, 해마다 그 노래의 파도를 타고 세월을 낚는 취미를 무엇에 비교할까. 올해에는 20여 년이 넘도록 보살펴준 패밀리 닥터 Pearles의 하루 최소 7시간 수면 유지하기 엄명이 있은 후, 로빈의 새벽 짝짓기 구애의 노래를 처음 듣는다. 우리 집 로빈은 도로변 소음이 시끄러워 정적이 고요한 새벽 시간에 노래를 한다.

중천에는 아직도 약간 기운 보름달이 횅하게 비추고, 동녘 하늘에는 붉은 아침놀이 구름 속을 달구고 있다. 창문을 열고 마을을 갈지자로 휘졌고 운전하느라 부활주일 새벽 연합집회 장소인 제일 장로교회에 도착하는데 30여 분이나 걸렸다. 로빈의 노래를 따라 한참을 취하며 시간을 놓쳤다.

교회에 도착하자 막 집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기도를 했다. 주님 나의 집 로빈새가 귀환한 것처럼, 올해도 주님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작은 사랑으로, 부활의 증인 대열에 동참하게 하소서. 한 생명이라도 좋으니 부활한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소서.

예배 후, 교회 별관 식당에서 밤새 봉자들이 고아낸 맑은 소고기국밥을 함께 나누며 예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4반세기 동안 전례 없는 불경기로 고통을 당하는 교민들에게 부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체험이 있으시길 기도한다.

부활의 체험은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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