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로빈 새의 자존심
by Reporter | 17.05.31 16:32 | 26,907 hit

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나는 동물 중에서 야생의 새들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는 뻐꾸기를 좋아해서 앞산 밤나무 골에서 뻐꾹 뻐꾹 울음을 울면, 공부방 창문을 활짝 열고 처량한 울음을 그칠 때까지 넋을 잃고 귀를 쫑긋하곤 했다. 이민 생활을 시작 하면서 까치와 캐나다 기러기. 로빈 새를 사랑하게 되고, 그 중에서도 딱새(thrush)과의 아메리칸 로빈 새(Turdus migratorius)를 가장 사랑한다.

작은 애완견과 애완용 새를 키운 시절이 있었다.

한동안 수놈 십자매가 새장 횃대에서 ‘삐리릭 삐리릭’ 우는 소리가 아름다워 키우며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곤 했다. 부모님이 이주해서 기거하시던 강원도 의암댐 신골 골짜기에도 형형색색의 기이한 새들이 많았지만, 세파에 시달린 탓인지 얼핏 스쳐가는 바람처럼 무심히 지나쳤고, 언젠가는 천연기념물인 딱따구리의 나무 구멍 파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서울의 대학에 제공했더니 해당학과 학생들이 이 산 일대를 뒤지며 난리 법석을 피워도 나는 거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캘거리로 이민 정착을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장남으로의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려 며칠간 입원하기도하고 약물치료를 하기도 했지만 병세가 그만고만,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 묵정밭을 일구며 제법 큼직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가게가 오후 4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이른 아침 새벽부터 집 뜰에서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잔디를 깎으면 기계로 두 서너 시간은 후딱 지나가고 하니 제법 큰 뜰이다.

집 주위에 오목조목한 화단을 4개나 만들고 집 옆에 2개의 텃밭을 일구었다. 갖가지 열매 맺는 정원수와 라일락 나무들, 꽃들로 장식하고 깻잎, 더덕,부추농사를 시작했다. 이웃의 친지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서리를 해가도 언제나 남아돌았다. 여분의 자투리땅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했으니, 건조한 캘거리에서 물대기 비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을 주면 지렁이 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비 오는 날 잔디밭에는 고개들을 빠끔히 내밀며 춤추는 모습들에 감탄을 하며 심신을 달랜다.

지금 생각하니 영리한 로빈 새가 이런 천혜의 서식장소를 놓칠 리가 없다.

2층 데크(deck)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10여년 이상을 한 해도 빠짐없이 찾아들며 번식을 하는 통에 아침이면 주위가 온통 로빈 새의 노래가 새벽을 가르고 라일락 향기에 실려 정원의 꽃잎들을 흔들어 대는 모습이 가관이다.

새총을 만들어 고양이가 접근하면 쏘아댔다. 그 많던 야생 고양이가 기겁을 하고 얼씬도 못하고, 얌체 같은 참새, 까마귀, 까치들이 로빈 새 입에 가득하게 문 지렁이들을 뺏어 먹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는 새총으로 얼씬도 못하게 했다. 늙은 로빈 새가 죽으면 정원에 묻고 작은 비석을 세워줬다. 수많은 인연의 체험의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순간의 기억들을 잊을세라 아직도 회고에 여념이 없다.

로빈 새가 똥을 싼 자리 밑에 찔레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자 흥부놀부의 제비가 물어준 박 씨 이야기가 생각나 새순을 싹둑 잘라 물에 씻어 먹고, 열매를 맺으면 얼른 입에 한 움큼 물곤 했다. 제비나 로빈 새가 같은 딱새 과의 철새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했다.

나의 병세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며느리가 첫 손자를 낳아 집이 비좁아지고, 아내나 주위의 친지들이 이사를 간청해도 귀를 막고 10여년을 꿈쩍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새로 지은 큼직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 동네여서 그런지 주위에 로빈 새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이듬해부터 뒷마당의 뚝 방에 계단밭을 일구었다. 블루베리, 체리, 들장미를 심고 야채밭을 만들고는 열심히 물을 주는데도 로빈 새가 힐끔 쳐다 볼 뿐 좀처럼 정을 주지 않는다. 들쥐 때문에 오른쪽 옆집 노인이 고양이를 놓아 키우는데 늘 내 집 뒷마당을 차지하고 있어 몰래 새총 질을 여러 번 했더니 그 해엔 얼씬도 안했다.

몇 해가 지나서 왼쪽 옆집이 이사를 가고 오래 동안 잡을 비운 사이에 로빈 새가 테크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다. 담장이 철조망으로 설치되어서 매일 관찰을 하던 중, 강풍에 새끼 두 마리가 떨어졌다. 어미가 없는 사이 몰래 둥지로 넣어 주다가 그만 들키고 말았다. 한 마리만 넣어주고 자리를 피했는데 몇일 동안 나만 보면 따라다니며 머리를 쪼려고 하는 통에 얼씬도 못했다.

다음 해 봄이 오자 드디어 우리 집에도 현관 처마 밑에 아주 젊은 로빈 새 수놈 한 마리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며칠이면 끝낼 집짓기가 두 주간을 지나도 끝이 나지 않는다. 처마 끝이 가파르기 때문에 바람에 지푸라기가 계속 떨어져 나간다. 아내가 아침마다 현관 문 앞을 청소하느라 불평이 대단해, 옛 집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현관에 물과 지푸라기 그리고 흙을 놓아두었다.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암놈이 가끔 찾아와 지도를 하는데도 막무가내인 것으로 보아 집짓기 경험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암놈은 지도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어느 날 안쓰러워 막대기를 둥지 밑에 슬며시 밀어 넣어두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오래동안 관찰했다. 입에 잔득 물고 온 지푸라기를 떨어뜨리더니 찌~익 소리를 내며 사라져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찌~익 소리는 경계와 분노의 표현이다. 올해에도 역시 건너 지붕에서 노래를 할 뿐 얼씬도 않는다.

로빈 새가 돌아오지 않으니 야채밭도 물주기, 김매기를 중단해 볼품이 없다.

늙은 로빈 새에 비해 젊은 놈이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익히 들어온 터라, 곧 막대기를 다시 제거하고 분노를 삭힐 때까지 참회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CKBS 캐나다한인방송 PC버전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