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둣국의 추억
by Reporter | 17.06.06 21:26 | 18,165 hit

청야 김 민식(캘거리 문인협회)

모처럼 아침 밥상에 만둣국이 나왔다.

맑은 국물에 다진 파, 계란고명을 얹고 김치가 곁들여진 단출한 식탁이다.

아내가 손자들을 얻은 후, 한국 명절이 되면 잊지 않고 풍성하게 속을 만들어 장만하곤 하던 음식인데, 때 아닌 아침 밥상 만둣국이라 무척 반갑다. 예년 같으면 소꼬리 뼈 우려낸 국물에 삶은 편육을 듬뿍 넣고, 잘게 썬 떡국도 넣어서 요란한 냄새를 풍기며 만든 명절음식이지만, 오늘은 평소 만들어 둔 육수국물과 만년조림간장으로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먹다 남은 냉동만두로 끓여낸 음식이다. 담백하지만 집안의 깊은 내공이 깃든 사연의 음식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옛 추억에 잠긴다.

나는 맑고 투명한 만둣국에 동동 뜨는 만두를 좋아한다.

이럴 때면 습관적으로 휘휘 젓는다. 만두를 숟가락으로 잘라 흩뜨려도 동동거린다. 만두 속이 풀어지지 않고 잘린 채 썬 파, 계란고명, 떨어져 나간 만두피와 어울려 물위에서 두둥실 춤을 추는 모습이 좋다. 6.25 전쟁 피난민 시절, 국제시장 노상 좌판의 만두국밥, 어머니의 만둣국, 아내의 만둣국과 함께 ‘원산할머니만두집’ 들이 아우려 지며 둥실거린다.

기쁘고 즐거웠던 것, 처절한 아픔, 고통들을 노년에 훠이훠이 저어보면 아름다움으로 승화 되고 저마다의 품었던 향기를 비로소 발산하는 것도 노년이라, 훠이 춤을 추어야 한다. 거룩한 위엄 보다는 무아의 춤에 생기와 힘이 솟구친다. 잔잔하고 투명한 육수 물위로 지난 우리 가족 인생사의 한 단면들도 따라서 춤을 춘다. 춤을 춘다는 것은 지나간 인고(忍苦)의 생애를 넘어서서 맛보는, 기쁨의 축제 같은 것이리라.

만두가 국물위에 동동거리는 모습은 같으나 잘린 속은 맛은 제각각이다.

피난시절, 어머니의 만두와 국제시장 만두는 돼지비계, 두부, 숙주나물은 같은 재료지만 어머니의 만두는 늘 구수한 맛을 지니는 독특한 맛이다. 아내의 것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비계를 제외한 순 살코기를 으깨고 묶은 김치를 넣는 담백한 맛이다.

부모님은 나를 초등학교 입학직전의 나이인데도 지리에 밝다는 이유로 국제시장 PX물품노점상 배달을 시켰다. 껌, 머릿기름 등 도매품목을 어께 가방에 잔뜩 넣고는 배달을 했다. 불법적인 상품들이다. 순찰 중인 미군 헌병의 검색에 걸리면 빼앗기고 헌병 차에 끌려가던 시절이다. 연막탄에 눈물범벅인 채로 골목 구석에서 헌병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배달해 주다보면 반나절이 넘어서야 끝이 나곤 했다.

아버지에게 주린 배를 하소연하면 으레 부근의 만둣국밥집을 데리고 가셨다. 만둣국에 밥을 말아 먹곤 했는데 어린 나이에 한 그릇을 후딱 먹어 치우는 기쁨이 있어 한동안 열심히 배달을 했다. 돼지비계로 기름 범벅의 국밥인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어머니의 만둣국은 사뭇 다르다.

농사로 짜낸 들기름과 부추, 직접 만드신 손두부가 어우러진 구수한 맛이다.

명절에 집을 찾으면 손수 기르시던 닭, 토끼 고기들을 잡았다. 삶은 고기를 썰어 넣은 맑간 국물의 만둣국 맛이 일품이다. 양념한 야생더덕, 송이버섯을 방안의 질화로 석쇠에서 연신 구워내시느라 방안의 연기를 뒤집어쓰며 함께 먹던 추억의 음식 맛이다.

아내의 만둣국 솜씨는 어머니의 맛을 이어받더니 요리 솜씨가 일취월장했다.

1987년 5월, 신세계 백화점이 주최하는 ‘제!회 아빠자랑 전국 요리대회“에서 ‘우럭 매운탕’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전국에서 예선에서 선발된 남편들의 요리 경연장에서 돌솥에 아내가 몰래 만들어 건네준 양념장 덕분에 평생의 잊을 수 없는 영광을 차지했다. 국내에서 처음 실시되는 아빠들의 요리경연장이라. 그날 중요 TV, 라디오, 여성잡지, 신문사 기자들의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국출연, 여성잡지에 인터뷰를 했다. 방송 신문 잡지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언젠가KBS TV ‘멋자랑 맛자랑’ 명절요리 만두 만들기 프로그램에 우리가족이 출연했다. 명절 전날 내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가족이 준비한 재료로 만두를 빚고 가족이 담소하며 식사하는 25분 분량의 방송에 소개되고는 욕심이 생겼다.

PD들의 권유로 집 인근 목동 오거리 뒷골목에 ‘원산 할머니 만두집’을 개업했다. 이것 때문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을 전부 투자했다. 음식점 경험이 없어서 아내가 이른 새벽 집에서 만두 속을 만들면 가게에서 여럿이 빚곤 했다. 점심에 벌써 만두가 다 팔려 저녁의 주 재료인 만두전골을 만들 기력과 여력이 없었다. 모두가 지쳐있었다. 한 주일이 지나고 음식점 문을 닫았다. 나는 10여일 만에 문을 닫은 것 같은데, 아내는 1주일 만에 한식점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주방장, 찬모, 홀 종업원을 새로 고용하고 갈빗집으로 힘겨운 1년을 운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아찔한 순간 들이다. 이처럼 처절한 삶의 굴곡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24년의 긴 세월을, 아직도 묵묵히 운영하는 피자 가게를 지탱할 힘이 없었으리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듯 지나간 소중한 순간들에 감사하며 두보의 시를 읊는다.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인생살이 칠십년, 예부터 드문 일이라는데.......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긋나지 말고 봄의 기쁨을 나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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