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소고(小考)
by Reporter | 18.03.26 12:57 | 17,868 hit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협회)

<캘거리 부활절 새벽연합예배>가 몇 주 남았거니 느긋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4월 1일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 주최, 벧엘 장로교회. 새벽 6시. 최정묵 목사(우리교회) 설교' 광고가 교민 신문에 큼직하게 게재된 글을 읽고는 화들짝 놀랐다. 해마다 집회 일자가 변경되기 때문이다. 전통의 전례에 따르면,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춘분(3월 20일~21일)이 지나면 보름달이 뜬다. 그리고 그다음 주일(일요일)이 부활절이다. 2018년 4월 1일 2019년 4월 21이 2020년 4월 12일 이런 순서로 부활절이 결정된다.

기사를 읽는 순간 일주일이 남았는데도 가슴이 뛰더니 사흘이 지나고, 황급히 글을 쓰고 있는 새벽 미명에도, 새벽연합집회에 참석해서 부활 찬송을 부르며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희망이, 계속 가슴을 뛰게 하며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도 아침에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일터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은 일이기에 감사와 부활의 감동은 그칠 줄을 모른다.

작년 늦여름, 미네완카 호수 인근의 좁은 길을 거닐다, 지나가는 자동차 백미러에 얼굴이 부딪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코 뼈가 부러지고 안경이 박살 나고, 그 후유증으로 코피의 과다 출혈로 병원 응급실에서 3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 "나는 아직도 꼭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마음속으로 강하게 읊조리던 말도 생생히 떠오른다. 의식을 회복하고 새벽 5시쯤 눈을 뜨니, 나의 침상 앞에는 8명의 간호원이 반원 상태로 서서 나를 관찰하며 실습 중이었던지, 나의 뜬 눈을 보고는 황급하게 뿔뿔이 헤어졌다. 퇴원해서 그 이튿날 성형외과 전문 의사가 호출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도중 빈혈로 또 쓰러져 다시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 후유증으로 Foothills Medical Centre 심장외과 교수의 진찰을 받았다.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던 대동맥 판막의 지질 수치 4.5cm에서 4.9cm로 급속히 늘어나 캐나다 정부 수술 허용치 5, 2cm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6개월 이내로 빨리 판막 교체 수술 일정을 잡으라고  담당 직원에게 지시를 했다.

살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염분이 많은 음식과 기름이 많은 음식을 일절 끊었다. 매일 수면을 8시간 정도 취하고 1시간 정도 가벼운 운동으로 근육량을 늘렸다. 자주 응급실로 가서 정기 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놀란 표정을 지우며 4.2cm  정도로 수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이제 올바른 생활 습관으로 노년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른다.

수술 담당 외과 교수와의 수술 면담 일정이 점점 몇 차례 연기되고  2번이나 특수 조형 촬영을 새로 하고 난 후,  소견이 나왔다. 1년에 한번 씩 정기 검진을 하되 어쩌면 수술을 영원히 안 할지도 모른다고 하며 힘차게 악수를 청했다. 그 소식을 듣고, 20여 년간 나를 보살피던 여자 패밀리 닥터도, 깊이 포옹을 해주며 격려했다.

부활의 참된 의미는 소생(蘇生) 하는 것, 부활한 예수가 새로운 믿음과 희망을 주었다. 힘차게 헤쳐 나가며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믿는다. 찌들고 진부했던 삶이 새로운 창조를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었다고 믿는다.

기독교의 중심 사상 중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살아나고, 다시 오는, 스토리가 연속되는데, 예수의 탄생과 부활, 재림의 공통적 요소가 그 핵심이다. " '예수가 다시 사셨다'. 해마다 반복되는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 부활이 나에게는 진정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늘 던져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으레 청년 시절부터 좀 더 흔쾌한 설교, 부활의 크나큰 기쁨을 찾아 나선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된다.

부활절 연합 새벽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성가대원으로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지방에 출장을 자주 다니던 직장시절에도 동료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대 연습에 참석하고는 시치미 뚝 떼고 성가대원으로 연합예배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서울의 연합 성가대에 참석하려면 한참을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기도 한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며 부유한 집 높은 담벼락 넘어. 하얀 목련 꽃이 맥없이 뚝뚝 떨어지는 곳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안쓰러워서 "오늘은 부활주일인데  낙엽처럼 힘차게 떨어져 보렴" 핀잔에 심술이 났는지 아직도 피지 못한 목련 봉오리들은 밝고 환한 불빛 아래 한결같이 북쪽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흥흥 거린다. 한 닢 한 닢 성가집 책갈피에 소중하게 펼쳐 꽃아 넣었던 기억이 새롭다.

군종 사병으로 복무 시절, 어느 해는 부활주일 아침, 군종참모의 휴가로, 나는 내무반을 돌아다니며 사단 신병 교육대 훈련병, 보충 중대에서 대기 중인 월남 파병 귀국 장병들 가운데, 성악 전공자를 차출하고, 사단 군인교회 성가대  그리고 서울 인근 교회에서 초청된 성가대와 함께 긴급 성가대를 조직했다. 꽤 많은 인원을 동원했다. 미리 프린트한 부활 찬송가로 예배 시작 전, 민간 교회 지휘자가 4부로 두 번인가 연습하고는 예배를 시작했다. 그 성가대 대원들의 화음이 얼마나 우렁차고 청아하던지 일부 장병들이 연신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격해 했다. 그 당시 예비사단에는 장병들의 작업량이 많아 휴일에도 야외 작업 차출이 심했기 때문이다. 입대 전 평소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친분을 쌓았는데, 우연히 같은 부대에서 마주친 보충 중대장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병교육대장도 참석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중대장, 대대장이 당직사령에게 휘하 기독 사병들을 늦게 귀대시킬 것이라고 전화로 특별지시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민간 교회에서 준비한 김밥과 통닭으로 저녁까지 푸짐하게 먹이고는 인솔해서 귀대 시킨 것도 부활주일의 아름다운 사건 들이다.

캘거리 첫 이민지 캘거리에서도 부활절 연합예배 소식을 들으면 꼭 참석했다.

같은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헤어졌던 교인들, 지인들과 아침 국밥을 나누며  담소하는 즐거움도 빼어놓을 수 없다.

아주 오래전, 벧엘교회에서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 참석했다. 불과 20여 명의 대원들이 부르는 찬양의 고운 목소리는 지금도 귀전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완벽한 화음을 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베델 교회의 국밥 맛은 캘거리 교민들이 인정하는 천하일품이라는 것을 아는 교민이 많다. 최정묵 목사님의 신선한 설교와 성가대 찬양을 들으며, 맛있는 국밥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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