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설렘
by Reporter | 18.04.06 22:09 | 15,810 hit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4월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설렘은 세찬 인생의 떨림이 한참을 요동치고 난 후에야 찾아오는 신비로운 마음의 것, 
인생의 고희를 지나서, 때아닌 세찬 역경을 만났다. 한참을 떨면서 필사적인 삶과의 투쟁을 시작하고 시련이 끝난 후, 고요한 침묵의 순간을 익숙해하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가슴이 하얀 눈더미처럼 맑아진다. 맑고 텅 빈 마음에 새로운 설렘이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그동안 겪은 시련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설렘의 진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맛이 더해지는 법이다.

설레는 마음에 가벼운 경련이 인다. 겨우내 고요한 눈더미 속에서 떨림은 한참을 푹 익은 후에야 비로소 시련을 머금은 채 잔잔한 물결의 파고처럼 찾아  오는 것이다, 보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 오고 있는 것들, 일상의 모두가 설렘과 함께 놀라운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게 뒷마당의 포플러 나무가, 긴 햇살에 아침이슬을 머금은  모습이 눈부시다. 현란한 옷치장이 너무 아름다워 눈가가 촉촉해진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모둠지가 겁도 없이 자란다. 가로등 아래 있던 나무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가로등 높이만큼 더 자라서  한 여름이면 가로등이 숨바꼭질하듯 한다. 어느 해 늦가을, 온화하고 고운 날씨 덕분에 샛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모처럼 보는 고운 단풍이다. 가을의 풍성함을 만끽하며 퇴근했는데, 그날 밤 밤새 폭설이 내렸다. 100여 년 만에 처음 맞는 폭설에 온 세상이 뒤바뀐 듯, 길가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즐비하다. 노란 단풍을 인체 부러진 아픔의 시련을 당했다, 캘거리 시청 청소부들이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수거하는데 한 달 이상을 소비했으니 그 폭설의 위력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제 그 포풀러 나무가 겨울이 오면 부끄러움도 모른 채 애지중지한 것들을, 미련 없이 순식간에 훌훌 내 버리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 폭풍우를 만나면, 한 여름이라도 푸른 잎들을 뚝뚝 날려 보내고 그래도 견디기 힘들면 팔뚝만 한 가지들을 버리는데 서슴이 없다. 나무도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터득한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리라. 과감히 버린다. 모둠 지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지만, 잔가지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부드러워진다. 부러진 가지 상처마다 연고를 듬뿍 바른 듯 봉인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 찌든 몰골이 하도 흉스러워 살포시 안아주곤 한다. 상처 덩어리와 큼지막한 겨울 잎눈도 버거운지 겨울바람에 심한 떨림으로 지낸다. 떨림 속에서도 잎눈이 점점 커진다. 나는 지금 잎눈 속에서 포플러 나무의 설렘을 보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설렘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가슴이 두근거리는 청춘 남녀의 설레는 마음이 아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며 경험하는 새로운 설렘이다.

귀환하는 로빈 새 맞이에 가슴이 설렌다. 정원에 있던 철쭉, 영산홍, 해당화 나무를 옮겨 뒷밭으로 옮겨 심으려 하니 설렌다. 앞 정원 그늘에 심어져 있던 영산홍 한 그루가 작년에 많은 꽃을 피웠는데 겨우내 검붉을 잎을 지닌 채 살아있다. 올해는 양지바른 뒷밭으로 모두 옮기려고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친다.

지금 집 떠난 로빈 새가 무리 지어 이곳을 향해 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리라. 아직도 겨우내 무릎까지 쌓인 눈더미 때문에 뒷밭으로 갈 수없지만, 봄눈은 쉬이 녹는 것, 로빈이 돌아 오기 전에 올해도 지나가는 새들과 로빈이 열매를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10여 구루의  블루베리 체리나무 가지치기를 끝내야 한다.

영하 13도를 오르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벧엘 장로교회에서 열린 부활주일 새벽연합 예배에 오래간만에 많은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참석했다. 정시에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을 빙빙 돌다  겨우 길옆에 주차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증인들' 김정묵 목사의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명 설교다, '부활은 삶의 일상 속에서 다시 사는 체험을 하는 것, 안식일 첫날 예수의 무덤가로 찾아간 여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부활의 체험들을 견딜 수없어, 널리 증거합시다.'

캘거리의 심한 불경기 속에서 겨우내 심한 떨림의 고통으로 지내다가 부활 주일 새벽에 성가대의 합창과 닭고기 육개장을 먹는다. 움츠렸던 어깨가 활짝 펴지며 설렘의 기지개를 편다. 여자 성도들이 성가대 합창이 끝나기가 바쁘게 지하 주방으로 급히 내려간다. 모두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기쁜 마음이 없으면 어찌 이 험한 이민생활에서 틈을 낼 수 있겠는가, 주님, 그분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더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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