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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글쓴이 : Harry 날짜 : 2020-03-08 (일) 12:24 조회 : 10929
글주소 : http://cakonet.com/b/B46-898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庭園)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질 때,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인적(人跡)은 끊겨
거의 일주일 간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宮城),
벽에서는 흙 뭉치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
'아이세여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글귀를 볼 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그 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하였던가..."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연애 사건, 혹은 하나의 허언(虛言), 혹은 하나의 치희(稚戱),
이제는 벌써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 갔다 하는
범의 그 빛나는 눈,
그 무서운 분노,
그 괴로운 부르짖음,
그 앞발의 한없는 절망,
그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없이 슬프게 한다.

'휠델린'의 시장,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우러러 볼만한 고관 대작,
혹은 돈 많은 기업주의 몸이 되어,
우리가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 밖에 못 되었다는 이유에서
우리에게 손을 주기는 하나
벌써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같이 보일 때,

포수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 향기
이것은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고목이 선
내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 오는 고요한 음악
그것은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에
누구인가 모래 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 즐거운 웃음 소리는 귀를 간질이는데,
당신은 벌써 근 열흘이나 침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이 되려고 할 즈음에
불을 밝힌 창들이 유령의 무리같이 시끄럽게 지나가고
어떤 어여쁜 여자의 얼굴이 창가에서 은은히 웃고 있을 때

화려하고도 성대한 가면 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
라고 쓴 묘비명(墓碑銘) 읽을 때
아, 그는 어렸을 적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한 날을 도회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남자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정에 넘치는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날 밤,
그녀는 어느 다른 남자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문이 열리고 소근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 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백로. 추수 후의 텅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렸을 적에 살던 조그만 마을에
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들렀을 때
그 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자리에는 붉고 거만한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져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들뿐이랴.

오뉴월의 장례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보름밤의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 보이는 죄인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ㅡ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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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님 2020-03-09 (월) 07:24
해리님 덕택에
아침에 명상을 하게 되네요
감사..
댓글주소 추천 0
     
     
Harry 2020-03-09 (월) 18:5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고른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수필이라고 말합니다.
회화적인 느낌이 잘 어우러져
상쾌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댓글주소 추천 0
coco 2020-03-09 (월) 09:07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고 느끼는 감성이지만
글로 써서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긴 정말 어려운데
저렇게 글로 표현해내는 시인, 작가들 대단해요.
댓글주소 추천 0
     
     
Harry 2020-03-09 (월) 18:57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지루하지 않게 잘 표현 한 것 같아요.
수필도 좋지만 배경음악 역시 괜찮았지요ㅎㅎㅎ
댓글주소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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