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조영남의 인생과 걸어온 길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음악과 그림에
대해 알아보자.
음악계 이야기
대작 사건을 논하기 전에 그의 음악적인 세계를
먼저 말하고 싶다. 그는 정상적 음악교육으로 다져진 목소리가 아니다.
태생이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 그런 부류의 가수들이 흔히 있다. 패티김 이라 든지……인순이 라 든지, 이승철 이라 든지..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설명은 못하겠지만 나름의
자기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는 것. 본능적으로 몸이 알고 있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왠만하면 컨디션 조절 안해도 언제나 기본이상으로 소리가 나고 목도 잘 안 쉰다. 반면에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영남의 노래를 들어보면 나이가 들어가며 변하는 목소리 톤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게 큰 기복없이 이제껏 버텨오고 있다. 그리고 그는 노래뿐 아니라 기타도 잘 치고 피아노도 곧잘 치는데 정식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걸 본적
있다. 그리고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도 많이 했다. 초창기
TV에 나왔을 때 누워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도하기도 하고 성악발성 임에도 불구하고 탐 존스나 엘비스
프레슬리 처럼 몸을 흔들 대기도 하고 다들 양복 입고 나와서 부르는데 군복 입고 나와서 부르는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노래하던 가수가 그림을 그렸다?
노래만 잘 하는 줄 알았던 그가 예전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려온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군에 있을 시절 그림을 많이 그리고 나름 인정도 받고, 그 뒤 제대후에도 그림을 간간히 그려 오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갑자기 그의 그림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실제로 그는 지난45년간
5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 중심에는 ‘화투’. 그는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기에 이르고 사람들은
그 그림에 호기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사실 화투 말고도 성조기,
태극기, 고전 명화를 패러디한 그림들도 있다). 그가
무슨 능력으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나? (사실 책도 10권
이상 집필한 작가 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전시회의 뒷면에는 남이 그려준 그림이 있었다는 것. 전시회를 열고 경매에 붙이는 과정에서 그의 그림 한점은 작게는 몇 백만원 에서 몇 천만원까지 팔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큰 이슈를 몰고 다니면서 그림의 가격은 계속 치솟기 시작하고 나름 성공한 화가 부럽지 않은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고액으로 팔렸던 그 그림들이 모두 조영남이 그린 게 아니라는 것! 송
모 작가가 대신 그린 그림이라는 것. 이 사건은 수면위로 떠오르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조영남에게 열광했는가?
열광의 조건은 크게 보면 2가지다. 존경에서 오는 열광과 미움에서 오는 집착이다. 때로 아이돌 가수의 음주운전 등에 악의 성 댓글이 천문학적으로 달리는 경우를 보면 미움에서 오는 과도한 집착
적 증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악플에 악플이 달리는 것을 보면 모두가 함께 가면서 나쁜 일을 저지를
때 오는 쾌감과 대중속에서 나 혼자만이 악인은 아니라는 일종의 면죄부 의식도 작용하는듯 하다. 어쨌든
오랜 세월 어른들의 선입견은 조영남은 딴따라요 예술적 문제아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타고난 목소리도 그의 돌발적인 행동 앞에 무기력 해지고 단순 싸구려 예술인으로 자리매김 된 부분도 인정해야한다. 조영남이 화투 그림을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2가지 열광을 다
보였다. 번뜩이는 재치와 끼로 무장한 독특한 그림이라는 관점과 이것도 그림이냐? 라는 약간의 깔봄과 미움에서 오는 평가들이었다. 결론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열광의 세력이 나타나고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왜 하필이면 화투가 소재일까? 그의 생각 이면에는 즐거우면 최고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도덕성이나 전통 사회적 잣대보다는 즐거움이라는 실용의 잣대로 측정한 듯 하다. 또 다른 의견은 친일파
적인 성향이어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의 그림은 이슈가 되었고 팔려 나가기
시작한 것.
과연 그의 그림은 왜 팔려 나갔을까? 혹시 사람들은 화투 그림의 예술성을 논하기 전에 그의 사회적 돌발행동에 기초한 네임밸류를 쳐다본 것 아닐까? 만일 똑 같은 화투 그림을 초년 화가가 발표한들 그 누가 관심있었겠는가? 사람들의
선입견에 “또라이 조영남이 그렸구나” 그러니 신기하고, 그것으로 인해 주목받으면 가치가 올라가고 그러니까
고가에 팔리는 것도 가능했더라 는 이야기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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