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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왼호미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5-10-28 (수) 23:38 조회 : 21462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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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가을이 점점 진하게 물들어 간다.

험난한 이민생활 스물세해가 어느새 훌쩍 지나가는데, 겨울을 넘기면 일흔 고개를 넘어가는 서글픔 때문인지, 올해막바지 계절엔, 어머니가 몹시도 보고 싶어 가슴이 저려온다.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리며 자판기가 흐려진다.

이 나이에 진한 그리움들을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머니 손을 만져 보고 싶다.

훗날 가보로 남겨두려고 깊이가 두터운 액자 속에 넣어 고이 간직해 두었던 옛 호미를 다시 꺼내 꼭 잡는다. 일하실 때의 거친 손과 임종하실 때의 어린아이 같이 보드라운 손의 체온이 번갈아 살며시 다가온다. 어머니의 영혼이 회귀하는 환상은 어머니가 사용하셨던 왼호미 때문이다.

 

추억을 더듬어 추산해보니, 춘천 대장간에서 어머니가 특별 주문해 만든 지 어언 오십년도 더 넘은 호미다. 살짝 비틀린 날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일반호미와 왼호미로 구분되는데, 왼손잡이는 일반호미를 사용할 수 없다. 주로 왼손을 사용하시는 어머니는 날은 비틀지 않고 날의 방향만 왼호미로 만들어, 힘이 부치면 오른손도 사용할 수 있는 겸용으로 사용하셨다. 불현 듯 집을 찾아가면 아버지는 호미 낫 괭이 삽 등을 마당 앞에 즐비하게 늘어놓고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숫돌로 간간히 갈고 계셨는데, 늦가을 추석 무렵에는 ‘호미씻이’하느라, 농기구의 날들을 갈고 깨끗하게 손질해서 고방 벽에 가지런하게 정렬해 걸어놓았다. 마치 서가에 진열한 책들처럼, 삼태기 코뚜레 갈고리 등과 어우러져 고방 벽 사방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서가는 부엌 옆에 딸려있는 고방이리라.

 

이민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홀로 찾아뵈었다.

하산을 권유하려고 작심하고 찾아갔다. 삼십년 이상을 밭농사 하시느라 그렇게 뚱뚱하고 육중하시던 분이 홀짝 마르셨다. “서울에 형제들이 많은데 혼자서 왜 이 고생을 하며 별스레 예수를 믿어요! 형제들 집에서 조금만 참고 지내시면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온 손이 부르트고 군살이 손에 알알이 박힌, 흙 때 묻은 검은 손을 보며 장남인 나는 애원을 했다. 그 많은 면박에도 철저한 예수쟁이 권사 어머니는 꿈쩍 않으셨다.

 

마지막, 집을 둘러보며 고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작은 호미가 어디에 또 있을까?

무딘 호미 날은 갈고 갈리어 반 뼘의 가냘픈 날로 변해서 나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호미 날에선 어머니의 땀방울이 흠뻑 밴 자루가 반들거리며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 추석 명절에 찾아가면 으레 “잠간 기다리며 쉬고 있어” 이내 흰 무명수건을 질끈 동여매신다. 언제나 늘 왜바지(몸빼)차림 ―왜바지는 어머니의 잠옷이고 농사일들 때문에 새벽 2시에 열리는 기도원 새벽기도회에 갈 때, 등불 든 채로 입는 작업바지였다.― 에 허리춤에 호미를 차고 망태기를 맨 채 산을 재빠르게 타시던 그 호미다.

내가 위험하다고 만류하며 뒤쫓아 가면 “나만 알고 있는 장소라 따라오면 않되” 그곳에는 뱀과 옻나무가 많아, 따라오면 인된다고 손사래 치시고는, 어느새 송이버섯과 야생더덕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가지고 오신다. 두드려 양념을 입히시고는 안방 질그릇 화로의 불씨를 살려 숯을 지피고 굽는다. 송이버섯 더덕구이 냄새가 온 방을 진통하지만 가족들은 탄성을 지르고 향긋한 냄세에 군침을 흘리면서도 그 고생이 안쓰러워 늘 퉁명 거렸다.

 

“나는 이 성산을 지키련다.”

어머니는 스스로 그 기도원을 성스러운 산 ― ‘성산’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우시지만 단호하고 한결같으신 대답이다. 강원도 의암댐 호수 길을 따라 깊은 산골짝으로 40여분을 걸어가면 인적이 드문 곳, 고등학교 2학년인 나를 남겨두고 부산에서 교회 교인10여 가구가 집단으로 이주해서 기도원을 세우고 화전 밭을 일구며 지내셨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전도 대장이었다. 부락 산골 주민들이 어머님 누님하며 따르는 것은, 함경도 원산에서 큰 반찬가게를 하신 덕분인지 반찬을 만들어 산골동네에 퍼 나르곤 했기 때문 일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별세하시고 몇 해가 지나고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서울 동생들 집에서 요양하시던 중이었다.

 

어머니의 위독한 소식을 접한 날 나는 어느 지인의 도움으로 당일행비행기 표를 구해서, 가게에서 일하던 허름한 운동화차림으로 황급히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천운이었다. 밤새도록 침상 아래 무릎을 끓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몇 마디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어 울기만 하는데,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보드라운 하얀 손으로, 모스부호를 치는 통신병처럼, 손끝으로 꼭꼭 누르며 수화 하시다가 새벽미명에 참 평화로운 모습으로 소천 하셨다. 임종의 삶이 이렇게 평안할 수 있을까? 장남을 만난 소중함을 기뻐하며 감사기도하며 숨을 거두셨으리라.

 

이제 생각하면 삶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산골을 선택했을까? 미처 헤아리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은 평생 울며 후회해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왼손잡이인 어머니의 왼호미를 지금껏 사용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인생의 철이 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호미를 통해서 어머니의 위대한 힘과 정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고통스러울 때면 어머니의 호미를 살포시 잡아본다.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의 삶이 나의 삶보다 더 힘이 들었느냐?”

 

호미도 날챙기이지마는 낫같이 들리는 없으리.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허,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이는 없도다.

아소, 임아, 어머님같이 사랑해주실 이는 없을 세라.

(고려가요 思母曲 중에서)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처럼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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