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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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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의 용기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9-08-30 (금) 16:46 조회 : 16389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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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5년 여 만의 한국 방문이다, 

8월 초순은 유례없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서울, 부산, 울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휴대전화기에서는 연신 폭염경보 방송이 흘러나온다. 짐을 들고 도심의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면, 마치 용광로에서 열기를 뿜어내듯 더운 바람이 엄습한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며 손수건을 흥건히 적신다. 건조한 날씨의 캘거리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진풍경들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짧은 체류 기간이지만 사회의 흉흉한 기운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친척과 친구를 만나거나, 택시 기사와 나눈 많은 이야기, 오래 동안 다니던 옛 교회에서도 밝은 미래의 모습보다는, 전과는 분명히 다른, 비관적인 대화들과 표정들이다. 예배당에는 늙은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많은 젊은이 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 사회의 모든 현상들이 담담한 체념과 함께 서서히 기울어 가며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만날 기약을 못하는 이방인, 노년의 슬픔 때문인가, 

아침 한 끼를 제외하곤 줄 곳 지인들과 매번 외식을 했다. 젊은이, 남녀노소 두루 만났다. 저녁은 교통이 편리한 대학교 지하철역 부근 음식점, 주점에서 주로 만났다. 적폐 청산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에 대한 화제가 단연 선두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치에 밝은 은퇴 기자는 보름이 지난 이제야 신문 방송에서 특보로 쏟아내는 비리 소식들을 깨알같이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한다. 일부 지식인들이라면 미리 알고 있는, 널리 회자되며 증폭되고 있는 비밀 이야기들이었다. 식사를 하다가 술잔이 오고 가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나그네라 말을 해도 별 부담이 없다는 듯, 동료 교수나 교인, 친구들 간에도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토한다.

사회가 온통 쉬쉬하며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잘못된 정치, 사회 정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서로 보수, 진보로 나누며 난도질당한다. 급기야 겁박을 당하거나 논쟁에 휘말리게 되고 분열이 시작된다. 침묵을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NO라고 말하는 용기를 상실해가는 우울한 사회를 보고 있다.

죠지 워신톤 대학의 교수였던 제리 B,하비(Jerry B. Harvey)의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 체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하비교수는  인구 5,000여명의 미국 작은 도시 Coliman 처갓집에서 쉬고 있었다. 8월 무더운 어느 날, 장인이 가족들에게 80km 떨어진 Abilene 큰 도시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가볍게 제안한다. 아내는 괜찮은 생각이라고 찬성하고, 장모는 가 본 지도 오래됐으니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하비교수는 자기가 운전을 해야 하고, 차 안이 덥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달갑지 않으나 자기만 반대하는 것 같아 찬성을 했다. 4시간의 여행길은 먼지가 펄펄 날리고, 자동차 안은 덮고 카페 음식은 형편없었다. 사위가 장모에게 오늘 여행에 대해서 소감을 묻자, 집에 있고 싶었는데 다른 세 사람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고 대답했다. 아내도 남편이 좋아할 것 같아서 동의했다고 했다. 장인은 가족들이 덮고 지루할 것 같아 무심코 제안했다고 했다.

사회 심리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에피소드이다. 모든 개개인은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싶거나 욕망을 추구하고 싶지만 사회적인 불이익이 주어질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공개적으로 아니오(NO)라고 말하는 용기를 두려워한다,

고대 서양 역사에서 NO를 말하는 부하의 이야기가 가슴으로 스며든다.

로마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카이사르 후임으로 그의 양자 아들 아우구스투스(본명;옥타비우스)가 초대 황제로 오른다. 기원전 27년~서기 14년까지 오랜 기간 통치를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공화국 말기의 혼란한 내전을 수습하고 참신하고 새로운 제국 정신으로 로마를 다스려 유럽의 찬란한 역사 문화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며, 후손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준 황제이다. 그는 '아니오'를 말하는 젊고 유능한 참모를 거느렸다.

아우구스투스 휘하에는 지략을 겸비한 마에케나스와 강직한 아그리파 두 젊은이가 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등극하기 전, 이전의 공화정에서 신제국을 건설할 무렵이었다. 참모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연설을 하도록 했다. 마에케나스는 유창한 언변으로 아우구스투스가 왜 로마제국을 창건해야 하는지를 역설하며 국민을 선동했다.

아그리파가 연설대에 올랐다. "아우구스투스여, 황제가 되지 말라고 해도 놀라지 마십시오. 황제가 되신다면 나에게는 큰 행운이지만 저는 반대합니다. 황제로서의 통치보다는 민주 정치가 더 훌륭한 체제란 것을 그리스 역사가 보여 줍니다. 개인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휘두르면 백성은 좌절할 것이고 행복과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아슬한 발언이다. 그의 야심을 누그러뜨리는 서슴없는 충언이다. 그러나 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관용의 통치' 자세이다. 아그라피의 연설을 경청한 후, 연설에 감동을 받아 자신의 외동 딸 율리아와 결혼을 주선했다.

그 당시 로마인의 체구는 왜소해서 게르만 민족에 비할 바 못되고, 그리스보다 열등한 후발 민족이라고 역사가는 기술한다. 페르시아 국가와 견줄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반도 국가가 훌륭한 통치자 한 명과 소수 부하들의 청렴함과 강직함이 위대한 로마를 창건했다.

새로운 국가란 청빈하고 올바른 상식을 소유한 많은 정치 무리들이 근간을 형성할 때, 비로서 발현되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2030 세대

욜로의 시대가는 듯 소확행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소확행(小確幸) 의 현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꿈을 품고 사는 젊은이들, 미래 보다는 현실 안주 생활 정신의 현주소가 전염병처럼 널리 퍼져있었다. 

소확행의 용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6년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나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 오는 고양이의 감촉'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이런 것들을 소확행이라고 표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맨'의 용어를 사용했다. 한번 뿐인 인생-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지금 행복을 희생하기보다는 현제하고 싶은 것을 하고 후회 없이 즐기는 삶으로 의미가 변질된 것을 지칭한 것이다.

"지금은 청년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습니다" 생맥줏집 넓은 홀에 가득 찬 젊은이들 틈에 유일하게 자리 잡은 우리 일행에게 건네는 지배인의 말이다. "정부에서 지급한 청년 실업 수당을 받은 젊은이 들입니다." 일본식당, 뷔페식당에도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방송에서 본 반일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듯 흥청망청 비틀 거린다.

그러나 법무장관 후보 조국 일가의 비리가 양파 껍질 벗겨내듯 연신 터지자 대학가 뜻있는 젊은 지성들이 들고일어나 '아니오'를 외쳤다. 미동도 않던 검찰이 관련자 자택들을 압수 수색을 시작했다. 일부 유튜브 방송에서는 쇼라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NO 함성에 반응을 시작한 것이다. 큰 실망 속에서 작은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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