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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수필] 약동하는 봄의 지혜들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22-03-28 (월) 08:28 조회 : 10185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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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5일

존경하는 Y형!

멀리서 봄의 소리가 연신 들려옵니다. 밖은 아직 영하의 찬바람으로 가득한데 양지바른 구석진 곳의 눈덩이를 발로 툭툭 치니, 파란 잔디 사이사이로 민들레 어린 새싹이 겁도 없이 방실거립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 행렬의 아이를 업은 어미 품 속에서 방실거리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모습처럼 말입니다.

"아직은 안돼!" 나는 화들짝 놀라 눈더미를 다시 만들어  덮었습니다. 주위는 아직도 누런 겨울잠을 자고 있는 중입니다.

가게 뒤뜰의 포플러 나무의 잎 봉우리가 삐쭉삐쭉 고개를 내밀며 철부지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한파가 들이닥치면 쥐 죽은 듯이 성장을 멈추고 오들거린 채 기다리곤 하지요.

엊그제 문득 봄을 노래하는 CD 한 장을 사려고 음반 가게로 향하다가 평소에 보아 두었던 명품 중고 가게를 기웃거렸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귀하고 오래된 클래식 레코드판과 CD가 잔뜩 쌓였는데 10여 장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습니다. 30여 분을 머물며 레코드 한 장 한 장을 살폈습니다. 100여 개가 넘는 클래식 레코드 판이 거의 손 때가 덜 탄 채 한 장에  2~3 달러 정도인 것으로 보아 음악 애호가 어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기증한 것 같습니다.

제작 연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 800여 개의 레코드판과 대부분 유사한 것 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욕심이 발동했습니다.

순간 나의 눈이. 번뜩이며 "모두를 구매하리라, 매니저와 의논하면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가격을 다 지불하더라도 살 것이다."

그런대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애호가들을 위해서 단호하게 체념을 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자신이 어느덧 조금씩 성숙한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Schubert 가곡, 교향곡 전집 CD 3매를 4불에 구매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해설을 미리 들어서 그런지 운전 중에 들으면 즐거워 피로가 싹 사라집니다. 팬데믹 시련 가운데 홀로 서 있어도 삶은 성숙해만 갑니다. 감사하지요.

존경하는 Y 관장님,

팬데믹 불황의 시대에 궁하면 통하는가 봅니다.

요즈음은 피자 재료 구하느라 전력투구합니다. 가게를 인수하고 28년 동안 이렇게 열심히 일한 기억이 없습니다. 도매상에서 선착순 재료를 구매하느라 새벽 7시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다 mushroom 몇 상자를 겨우 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커피 한 잔과 주머니 속의 마들렌 케이크 몇 조각을 먹으며. 횔덜린의 서사시 eBook을 읽습니다.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4.000불의 비용을 지불하고 수술한 Alcon사 제품의 다초점 백내장 렌즈의 후유증으로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눈물 안약을 하루에 예닐곱 번 넣는데 오늘은 촉촉한 눈물 때문에 적게 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일 할 수 있다는 감사함, 천국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식재료 값이 연일 폭등하는 걱정보다 도무지 재료를 살 수가 없는 걱정이 앞서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무조건 구매합니다. 식당 영업이란 떡고물이 묻어도  묻어오는 법이지요. 주말 재료를 다 구해서 오늘 내일, 한나절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합니다.

가게 히터가 말썽이나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기술자를 불러 모터를 갈고 클리닝하는 비용을 족히 600불 정도 지불했을 겁니다. 한 번 내부를 뜯어 살폈더니 모터 벨트가 거의 끊어지려고 느슨했습니다. 벨트를 새것으로 사다가 갈고, 상업용 필터마저도 갈았습니다. 내부를 청소하는 지혜가 생긴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35불을 지출했습니다.
13년 사용 중인 집의 세탁 건조기가 갑자기 쿵쾅 거리며 고장이 난 것 같았습니다.  COSTCO에서 새것으로 교체하려고 노심초사 중 유튜브에서 밸런스를 맞추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조정했더니 잠잠해졌습니다.

궁하면 통하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진리는 진리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고 외치는 철학자의 글이  생각납니다. 지혜로 다듬은 생활 철학의 묘미를 이제야 터득하며 배우는 중입니다.

소소한 기쁨을 즐기다 보면  팬데믹 세월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작은 것들이 보이고 자연의 여린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힘이 들면 지천의 자작나무 숲을 걷곤 합니다. 철벅거리는 발자국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슴들과 코요테들이 추격전을 벌이며 쫓고 쫓기는 소리들이 들리는 듯합니다. 낙엽 위 적설 밑으로 남긴 동물들의 어지러운 발자국, 평소보다 깊이 팬 흔적들이 선명하고, 매우 큰 보폭으로 미루어 삶의  치열한 소용돌이가 한바탕 지나간 듯합니다.

삶의 소리들이 자작나무 가지에 걸려서 우짖는 소리들, 그 자연의 은은한 소리가 성스럽습니다. 심연으로부터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 같은 것입니다.

엊그제 집을 나서며 집 앞 인도 길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흐르는 여린 물길 소리, 봄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억지로 끌려가서 제작한 보청기를 끼고 듣는 것처럼 내밀한 자연의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요즈음 눈을 치울 때  인도 옆 가느다란 물길까지 치우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얼음이 얼고 얼음 장 밑으로 흐르는 눈 녹은 물이 춤 주며 노래하는 소리를 보고 듣습니다. 동네 Circle을 한 바퀴 빙 돌아도 가녀린 물길 도로는 아직 하얀 눈더미로 덮여 있었습니다.

봄은 기다림의 준비된 자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봅니다. 소확행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 봄의 소리들, 나의 소중한 중년의 가을은  이렇게 열매를 맺으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게로 일하러 갈 시간이라 이만 총총 붓을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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