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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아침 고향 생각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9-03-13 (수) 01:10 조회 : 1032
글주소 : http://cakonet.com/b/column-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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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설날 아침 새벽이다. 

마음은 이미 고향에 있는데, 이 몸을 초승달 쪽배에 태우고 훨훨 날아 부모님의 묘지에 내려주면, 총총한 별빛 아래 찬송을 부르며 펑펑 울고 싶다. 세상 떠난 동생들을 찾아 분향하며 참회로 용서를 빌고, ​ 형제들과 친척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만주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 따라 여러 곳을 이주하며 떠돌아다녔으니 이향(離鄕) 민이고, 전쟁으로 북쪽 고향을 강제로 떠난 실향(失鄕) 민이다. 힘든 생활 때문에 가족을 이끌고 머나먼 타국 땅에서 타국살이를 하고 있는 나는 분명 고향 떠난 나그네, 현실이 더욱 서글프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그네의 설움은 점점 깊어 가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더해져 향수(鄕愁)의 병이 들기 시작한다. 나그네 이민자의  고향 생각은 하늘만 큼이나 높고 소중한 것, 우울해지며 존재의 상실로 발전할까 두렵다.

고향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리기만 해도 고향산천이 펼쳐진다.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어린 시절 자라면서 정이 깊이 들었던 곳이 아니던가. 

복잡한 고향의 의미와 정의를 가슴에 이고 살아도 나의 고향은 늘 포근한 곳이다. 

나그네 인생은 죽을 때까지 포근한 고향 집을 향해 달려가는 길고 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고향의 소리들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재첩국 사이소' '찹쌀 떠억 사려' '따근한 두부 왔심더' 새벽이면 손에 든 딸랑 종을 흔들며 새벽을 깨우는 찹쌀떡, 두부 장사 아저씨, 머리에 꽈리를 틀고 재첩국을 이고 가는 아줌마 들의 고함 소리들이 요란하면. 뻐꾸기도 놀란 양, 앞산과 뒷산에서 뻐꾹 뻐꾹 연신 울었다. 

구정 전날,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손수 지어준 판잣집 토담 공부방으로 마을 이장 영감님이 찾아왔다. 헌 담요를 뒤집어쓰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직 아침 안 묵었지? 나하고 아침 묵고 오늘 손자들 숙제 좀 가르쳐 줄 수 있나?"  나는 얼른 따라나섰다. 마을 부잣집이라, 김 영감의 논과 밭을 밟지 않고는, 그 마을을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의 부유한 종갓집이다. 큰 기와집에 너른 마당, 하인들이 구정 설 준비에 여념이 없다. 열 칸도 넘을 방을 지나서 공부방에는 손자와 손녀가 새파랗게 질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손자는 나와 중학교 2학년 같은 반 친구이고, 두 살 아래 손녀는 초등학생이다. 나는 상위 성적을 유지해야 자격이 있는 반장이었고 친구의 성적은 늘 하위를 맴돌아서, 방과 후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기 하기 일쑤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나서야 공부방을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영감 님이 안방으로 불렀다. 그렇게 호화롭고 큰 안방은 처음 구경했다. 세배를 했다. "세배 돈 받거라." 받아 든 흰 봉투가 두툼하다.

다음 날 새벽 아침,

재첩국 장사 아줌마의 외침에 달려 나갔다. "남은 재첩국 다 사면 얼마 인교?" 봉투에서 돈을 꺼내 건넨다. 아줌마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니 무슨 돈이 이리 많노" 어제 이장님 새뱃돈 입니더'

온 가족이 이틀을 먹고도 남은 기억이 자랑처럼 생생하다. 가난했지만 늘 당당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공부하다 배가 고프면 마을 정자 나무 우물가로 달려간다. 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물배 채우면 까치가 깍깍 울어대며 반긴다.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고향 마을이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꿈과 낭만이 깃들여진 정든 곳이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스라한 추억들이다.

구정 새해 아침, 며느리가 아이들 학교에 태워다 주고 아침 일찍 김장을 도우러 왔다.

한국 식품점에서 한국 배추 4 상자에 60 불을 주고 사들인 아내는, 며칠 전부터 싱글벙글 신바람이 났다. 지금의 고물가 시대에 값이 싸고 단맛이 나는 상품의 배추를 사들인 쾌감 때문이다. 배춧속을 보물이는 힘든 일과 설거지는 나의 몫,  끝나면 11시 노인회 주최 점심 모임에 참석을 하고, 가게에서 일을 하다 오후 7시 합창반 삼일절 기념 예술제 참가 연습에 가야 한다.

이렇듯 구정 아침의 고향 생각은 아련하게 저 멀리 있는, 달려가야만 하는 염원과 현실의 간격 속에서 늘 존재하지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인생은, 일생을 고향 집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과 동일한 개념이어서, 다시 운명의 덤덤한 생각으로 돌아가곤 한다.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 자루 벗을 삼아 화전 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 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밤을 지새웁니다 (고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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