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끝없는 평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독일 프랑크 푸르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캐나다로 가는 긴 여정의 길이었다. 기억으로 한국의 1990년대 초라는 생각이니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때 나는 조국애와 동포애로 불타던 시절이었다. 3년여의 캐나다총연합회 회장직을 마치고 이제 더 이상 공적인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좀더 나 자신을 위한 값어치 있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상념에 쌓인 나에게 해외동포들은 나를 조용히 살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국의 총연회장을 지낸 장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해외 원로지도자 50여명으로 구성된 한반도통일연구회를 창립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캐나다에서는 동부의 몬트리올대학 교수 정영섭 박사, 중부 토론토 민주건설협의회 회장 박찬웅 교수(전 인하대 법대 교수), 서부 이유식(시인, 전 총연회장)이 선임되었으니 참여해달라는 청이었다.
그 해 7월 창립총회 겸 모임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으니 참여를 바란다는 요지의 연락이 왔다. 우선 한반도통일연구회라는 단체명이 명분과 뜻이 있다는 생각 속에 머리도 식힐 겸 동구 여행의 기회가 온 것 같아 나의 아내를 대동하고 본 회의에 참여하여 동구 여행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처음 가는 동구여행은 흥분 속에 이루어졌다.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를 둘러보는 여행 일정은 우리 부부를 흥분하게 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독일을 경유 캐나다로 오는 일정계획에서 기차를 타고 동유럽 대륙의 대평원을 달렸다.
끝없는 동구 대륙은 초가을을 맞이한 해바라기가 날 좀 보라는 듯이 수줍게 피어나 태양빛 따라 아름다운 자태를 좌우로 회전하며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글을 Sunflower로 주제를 잡은 것은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극에 달한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을 생각하였음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1위의 해바라기 생산국으로 년간 1,400만톤을 생산한다. 그 넓은 평원 2차 세계대전 때 3개국의 젊은 청년들이 산화되어 흙이 된 그 땅에서 생산되는 해바라기 꽃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인다.
지금 이 전쟁이 종결되고 세월이 흘러간 후 이 평원에서 피어날 해바라기 꽃을 상상함에 나의 연민의 정은 감내할 수 없다. 그 평원에 다시 피어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람들의 죽음이 나의 뇌리를 스칠 때 애절한 마음의 번뇌를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해바라기 영화 내용을 요약하면 1945년 2차 세계대전 때 죽어간 이태리, 독일, 러시아 병사들의 죽음에 명복을 빌며 197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내가 이방인이 되기 전인 1972년도에 대한극장에서 감상한 것으로 기억을 상기해 본다.
즉 지오반나역 <소피아 로렌>, 그의 남편역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안토니오>를 전쟁터로 보낸 <로렌>, 소식을 모르던 남편이 어느 날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로렌>은 망연자실 한다. 그 후 로렌은 그의 남편 <안토니오>가 살아 있으리라는 상상 속에 멀고 먼 러시아로 그를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고생 끝에 모스코바 북쪽 변두리에 이태리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로렌이 찾아가는 길 대평원에 해바라기가 아득히 성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로렌은 루드밀라 사벨리에바역 <마샤>라는 러시아 여인의 집에서 안토니오를 발견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전쟁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마샤와 결혼을 하여 아기까지 가졌음을 알게 된다. 로렌은 슬픔에 잠겨 이태리로 돌아온다. 이태리로 돌아온 로렌은 안토니오를 잊기로 결심하고 나이가 많은 공장노동자 에토(마이클 그린)과 결혼을 해 아들을 하나 갖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향수를 못 참아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오는 로렌을 찾는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이들의 사랑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말없는 재회는 슬픔만 잉태한 채 서로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 영화로 해피엔딩이 아닌 전쟁의 참화가 인간의 삶을 난도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순애보의 아름다움을 상상하시며 다시 한번 감상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