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67
<민족의 영원한 자랑,상 나의 친구 김종국 회장>
대가(代價)없는 희생.봉사.사랑 이를 수행하는 자는 민족의 꽃이고 영원한 우리 민족의 자랑이기에 우리의 민족 문화에 꽃을 피우고 동방예의지국이란 문화 민족으로 각광을 받고 영원한 지속을 이루리라.
괴헌(槐軒) 고택의 전통과 조국 유림의 찬란한 꽃을 피우는 김종국 회장. 참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를 가까운 친구로 오랜 세월 동안 우정을 나눔은 나의 영광과 자랑이라고 피력해 본다.
영남 유림의 본향은 안동, 영주, 봉화임은 나의 향리의 자랑이다. 이 지역의 군계를 지날 때 군계에는 선비의 고향이라는 사인을 볼 수 있다. 내가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군계에 붙어있는 이 유서 깊은 사인을 보면서 선현들이 지켜온 고향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 적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따귀를 맞기에 알맞은 말일 것이다. 사농공상이 이씨 조선 500년의 역사였기에 그 시절의 반상이 아직도 아련히 존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나의 친구 연안 김씨의 종손 김종국 회장을 영원히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이 친구의 민족문화를 지키고자 한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에 아낌 없는 찬사와 존경을 표한다.
세상이 아무리 황금만능이라 하더라도 나의 일신의 부와 안위보다도 민족 백년대계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은 나 같은 범인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에, 나는 나의 벗 김종국 회장을 한 없이 칭송을 하며 아낌 없는 박수를 치고 싶다.
국가를 위하여 그가 기증을 한 국보급 보물을 어찌 돈으로 환산을 할 수 있을까 마는 김종국 회장은 16년 전 감정가격이 40억원을 상회한 가보를 2014년 국가에 기증을 했으니, 내 생각으로 지금은 1백억대 이상의 가계의 보물을 국가에 기증을 했고, 국가에서는 이 국보를 보존키 위하여 영주 순흥 소수 서원 선비의 촌에 건물을 지어 이 가계의 기증품을 몇 개의 방에 분산하여 우리 문화의 보존과 후세들에게 귀감을 주고자 전시를 하고 있다.
이어 연안 김씨의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가계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연안 김씨의 시조는 김 성한(金暹漢)씨로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김씨의 본관록에 의하면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형제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미움을 받아 형은 북빈경, 지금의 강릉에 살게 되었고 동생은 시염성 지금의 연안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안으로 유배된 아우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냈다. 이 가계에서는 고려 말부터 수도 없이 많은 정승을 배출했기에 다 기록을 할 수가 없다.
고려조를 이어 조선조에서도 7분의 영의정과 인목대비, 즉 왕비를 배출하게 되는 등 정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한국의 명문이다. 근세에는 15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던 김원기 등이 이 가문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김덕주 대법관을 비롯 김우전, 김여제, 김창의, 김기홍 등의 독립투사도 있다.
이 가계가 한국의 정관계에 기여한 것을 다 기록할 수 없고, 또 옛 뿌리를 정확히 기록지 못하는 우를 범할까 두려움이 있기에 여기에서는 간단히 나의 친구 김종국 회장에 관한 업적과 김 회장의 직계 조상에 관하여 간단히 피력코자 했다.
김 회장의 직계 조상은 세조 때 좌군사정공파 9형제 중 셋째가 사육신 성삼문의 장인으로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가족을 데리고 영주 두암에 정착하게 되었고, 김 회장의 직계 조상임을 알 수 있다. 연안 김씨는 현재 전국에 10여개 이상의 집성촌에 산재해 살고 있다. 괴헌 고택의 현 주소는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이다.